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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통독회2일차(2021.3.21.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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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기 평신도성경대학-백투더베이직(모세오경)과정-두 번째 독서(2021. 3. 21)

 

1.    타락(3): 죄의 기원과 하나님의 사랑을 알려준다.

2.    뱀은 사단을 상징하는 짐승으로 묘사되었다(3:1). 그런데 그것은 하나님이 지으신 짐승 중 하나였다. 그러므로 기독교 신앙은 조로아스터교와 같이 선한 신과 악한 신의 대결구도로 세상을 설명하지 않는다. 하나님만이 절대 주권자이다. 그 분만이 세상을 창조하고 운행하시는 분이시다. 뱀은 은밀하게 다가와 사냥감을 덮치는 조용한 사냥꾼이다. 독을 뿜거나 질식하게 하여 사냥감을 죽인다. 뱀의 갈라진 혀는 간사한 입을 상징한다. 우리가 무슨 말을 듣는가가 중요하다. 사단 마귀는 간사한 말로 우리를 넘어뜨리려 한다. 사단 마귀는 속이는 자요, 고발자요, 관계 파괴자이다. 분열시키는 영이다. 사단 마귀는 간교한 말(거짓)로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이간질시키기 시작했다.

3.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3:1). 여기서 주목할 단어는 참으로모든이라는 말이다. 사단 마귀는 이 두 마디 말을 삽입하여 사람의 마음을 충돌 질 했다. “참으로라는 말은 '정말인가?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들게 하는 매우 간교한 말이다. 하나님은 2:17절에서 반드시죽으리라고 하였다. 여기서 반드시(무스)”정한 기한 보다 일찍이라는 뜻을 내포한 말이다. 그런데 3:1참으로(에프)”라는 말은 그러니까, 정말로, 진실로라는 말이다. 하나님이 정말로 그렇게 말씀하셨냐는 것이다. 이것은 상대방에 대한 의심을 불러일으키는 말이다. 사단 마귀는 이와 같이 우리의 관계를 파괴하려고 한다. 조금의 의심의 구멍이 믿음을 무너뜨리고 관계를 파괴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선의와 존재에 대한 확실한 믿음을 가져야 한다. 불신은 곧 패망의 지름길이다.

4.    모든이라는 말은 하나님의 말을 완전히 왜곡한 말이다. 2:16절을 보면 하나님은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라고 하였다. 모든 나무 열매는 먹어서는 안 되는 것이 아니라 먹어도 된다고 한 것이다. 다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만은 먹지 말라! 그러나 사단 마귀는 이 말을 뒤집었다. 말씀을 왜곡하여 하와를 유혹한 것이다. 이와 같이 사단 마귀는 거짓말하고 이간질하는 영이다. 이 시대에 거짓과 간교한 말은 무엇인가? 시대를 분별하고 시험에 들지 아니하도록 깨어 기도해야 한다.

5.    동산 나무의 열매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3:2-3). 사단의 유혹에 호응하여 하와 역시 말씀을 왜곡한다. 동산 나무 열매를 임의로 먹어도 된다는 말에서 후퇴하여 단지 먹을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금지의 명령에 대해서는 과장한다.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3:3). 그리고 마지막에는 하나님의 단정적인 말을 그럴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말한 것처럼 둔갑시킨다. “죽을까 하노라”(3:3). 명백한 왜곡이다. 이단(異端)은 끝()이 다르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가감해서는 안 된다(22:18-19). 그것은 진리에서 벗어나는 것이다(죄를 의미하는 희랍어 하마르티아과녁에서 벗어났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음을 상기하여 보라).

6.    이 때 사단 마귀는 하와의 빈틈을 파고든다.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3:4). “반드시죽으리라는 말은 결코죽지 않으리라는 말로 바뀌었다. 이제 사단 마귀는 하나님의 말씀에 정면으로 대적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덧붙인다.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3:5). 이 말은 너희가 하나님과 같이 될 수 있는데, 그것을 막으려고 하나님이 너희에게 그런 말을 한 것이다. 너희를 속인 것이라는 말이다. 오늘날 우리를 이와 같이 분열하고 대결하게 만드는 사상은 무엇인가? 그것은 말할 것도 없이 사단 마귀의 도구이다. 그러나 복음은 아씨시의 프란치스코의 기도와 같이 분열이 있는 곳에 평화를 주는 것이다.

7.    이 말을 듣고 하와는 선악과를 보게 되었다. 어제도 그제도 있던 선악과였지만, 지금 바라보는 선악과는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가 되어 있었다(3:6). 인간의 마음에 욕심이 들어간 것이다. 하나님의 선의를 의심하게 되고 결국 하나님과 같이 되리라는 말에 걸려 넘어가 그 마음에 욕심을 품고 그것을 따 먹은 것이다. 우리의 마음으로 보는 것이 우리의 인생을 결정한다. 주님은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지 외적인 것이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고 하였다(15:18-20, 7:15-16, 20-23). 무엇보다 우리의 마음을 지켜야 한다고 했다(4:23). 그러나 하와의 마음 속에 들어간 불신과 욕망은 결국 그녀로 하여금 하나님이 금한 것을 범하게(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대적하게) 하였고 그것을 자신의 남편 아담에게까지 주어 먹게 하였다(3:6).

8.    그러나 이것으로 아담의 죄책이 면제되는 것은 아니었다. 성경은 분명히 적기를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었다고 기록하고 있다(3:6). 억지로 먹게 하거나 먹도록 유도한 것이 아니다. 주었더니 그가 알아서 먹은 것이다. 아담도 하와와 같은 마음(욕심)으로 선악과를 먹었다. 그러므로 죄책은 바로 나에게 있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것은 누구때문이 아니라 바로 때문이다. 그러나 무책임한 인간의 군상은 하나님의 추궁에 밖으로 탓을 돌렸던 아담과 하와의 모습을 닮았다(3:12 이하 참조).

9.    그렇다면 하나님은 어째서 선악과를 두셨는가? 이것은 오랫동안 독자를 괴롭히는 질문이었다. 선악과를 두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을 왜 두어서 죄를 짖도록 하였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죄책을 면탈하려는 항변이다. 바로 죄의 책임을 하나님에게 돌리려는 악한 의도에서 나온 말인 것을 인정해야 한다. 하나님은 인간이 죄를 짓고 멸망 받도록 하기 위하여 선악과를 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의도는 에덴동산의 모든 실과를 먹고 누리며 복된 삶을 누리는 것이었다. 다만, 선악과를 둔 이유는 인간은 자유를 가진 존재로 지어졌다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이었다. 심지어 인간은 하나님의 뜻을 따를 수도 거스를 수도 있는 자유를 가지고 있었다. 하나님의 선한 뜻을 따를 때는 축복을 누릴 것이로되, 불순종하고 거역하게 될 때에는 반드시죽을 것이다. 선악과는 바로 이 인간에게 주어진 자유(선택의 자유)의 상징이었다. 그런데 처음 인간은 이 자유를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쪽으로, 즉 금지한 선악과를 따 먹는 쪽으로 사용하였다. 죄의 책임은 그 누구의 것도 아닌 바로 나 자신의 것인 것이다. 하나님의 선의를 의심하고 하나님 같이 되고자 한 인간의 욕망, 그 교만의 씨앗이 속에서 자라나 하나님과 등지는 선택을 한 결과, 인생에 죄가 들어오고, 결국은 영적으로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가 된 것이다.

10.  선악과를 따 먹은 결과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게되었다(3:7). 이것이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면서 일어난 첫 번째 결과였다. 그들은 자신들이 벗은 것을 수치로 알게 되었고, 무화과나무 잎으로 치마를 만들어 서로를 가려 단절되었던 것이다. 과연 인간이 선악을 알게 될 것이라는, 그리하여 하나님과 같이 될 것이라는 사단의 유혹은 무엇을 의미했는가? 그것은 사상의 분열이요, 인간관계의 분열이었다. 이후 인간의 역사는 어떻게 보면 이 분열이 가속화되어 온 역사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오늘날 후기근대를 맞이하려 그 정점을 향하여 치닫고 있다. 우리는 말 근대로 말세지말(末世之末)의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다.

11.  인간이 죄를 짓기 이전의 세계에서 우리는 사상의 분열을 볼 수 없다. 관계의 단절도 없었다. 선악의 구분과 분열 그리고 싸움은 죄의 결과로 인한 것이었다. 동양에서는 흔히 인간의 본성과 관련하여 성선설이니 성악설을 말한다. 하지만 이것은 인간이 범죄한 후 현상에 대한 해석의 차이를 드러낼 뿐이다. 범죄 이전 인간의 성품을 우리는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은 양비론적 시각에서 해석해야 한다. 하나님의 창조는 그가 보시기에 좋은것이었다. 그러나 죄가 세상에 들어오면서 여기에 균열이 생겼다. 그리고 인간의 역사는 선악간 투쟁의 역사가 되었다.

12.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 낯을 피하여 숨었다(3:8). 이것은 물론 하나님과의 관계의 단절을 표현한 것이다. “그들이 그 날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3:8). 얼마나 슬픈 순간인가? 하나님이 어째서 두려운 존재가 되었는가? 그래서 사람들은 죄를 지으면 숨는 것 같다. 눈을 마주하고 편안히 대화할 수 있는 관계가 더 이상 아니기 때문이다. 떳떳하면 왜 숨겠는가? 그런데 죄를 짓고도 숨기는커녕 적반하장인 경우도 요즘은 허다하니, 양심에 화인을 맞은 것일까(딤전 4:2)?

13.  그 다음에 3:9절 이하에서는 하나님과 사람, 그리고 사단 마귀와의 사이에 일련의 대화가 나온다. 먼저 하나님은 아담을 찾는다(3:9). 어디 있는지 몰라서 찾았겠는가? 여기서 찾는다는 것은 매우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다. 하나님은 인간의 죄악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찾고 부르시며 사랑하고자 하신다는 것이다(528장 참조). 그러자 아담은 대답한다. “이르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3:10).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알렸느냐? 내가 네게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열매를 네가 먹었느냐?”(3:11). 책망보다는 왜 그랬느냐는 안타까움의 표현처럼 들린다. 아담의 대답에 하나님은 마음이 아프다. 그 때 아담은 대답한다. “이르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3:12). 여기서 아담의 대답은 두 가지 측면에서 매우 실망스럽다. 첫째, 그는 잘못했다는 말 대신 그 화살을 밖으로 돌리고 있는데, 첫째는 하나님에게요(“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이라는 말이 그렇다), 둘째는 그의 아내, 하와에게이다(“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므로라는 말이 그렇다). 인간의 책임전가의 악한 습관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둘째는 자기 행위의 책임을 면탈하려는 태도이다. 그는 행위의 원인을 하나님과 여자에게 돌림으로 상대적으로 자신의 행위는 어쩔 수 없었다고 항변하는 것 같다. 내가 선악과를 따 먹은 것은 잘못이지만 그것은 어쩔 수 없었으므로 내 죄가 아니라는 것이다.

14.  그러자 하나님은 여자에게 다시 어째서 그랬느냐?”고 묻는다(3:13). 여자는 뱀에게로 책임을 전가한다(3:13). 모든 것은 뱀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그리고 그것을 만든 것은 하나님이다. 마치 이렇게 항변하는 것 같다.

15.  이 모든 말을 듣고 하나님의 처분이 내려진다. 먼저 뱀은 저주를 받았다(3:14).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3:15). 여기의 여자의 후손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 위에서 악한 사단 마귀를 궤계를 물리치고 승리하였다. 그러므로 예수 믿는 우리 성도는 이미 이긴 전쟁에 참여하고 있는 줄 믿는다. 우리는 고지를 탈환하기 위하여 올라가야 할 자들이 아니라, 주님이 이미 탈환하신 고지 위에서 주님의 승리를 선포하며 세상을 이기며 축복을 누릴 하나님의 백성들이다.

16.  여자에 대해서는 임신의 고통을 크게 하여, 수고하여 출산할 것과 남편을 원하고 남편의 다스림을 받게 될 것을 말씀했다(3:16). 이것은 죄의 결과였다. 원래 돕는 배필로 지어졌던 그가 남편을 섬겨야 할 위치로 변경된 것이다. 그러니까 페미니스트들은 성경이 가부장적이라고 비판하는데, 이것은 무식한 말이다. 성경은 가부장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이 죄의 결과임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바울은 부부가 서로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5:22-33). 왜냐하면 그것이 창조 본연의 관계이기 때문이다. 구원받은 성도의 가정은 마땅히 그래야 한다. 왜냐하면 구원이란 죄로 인하여 갈라지고 왜곡된 관계의 회복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구원이 없는 곳에는 이러한 갈등과 싸움이 끝이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죄 된 구조 속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17.  아담에 대해서는 땅이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고 했다(3:17). 인간의 죄로 말미암아 땅이 저주를 받았다. 그리하여 땅은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내고(3:18), 인간은 죽을 때까지 수고하여야 먹을 것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3:19). 이것은 자연과의 단절과 대립을 상징한다. 인간의 불행은 생육하고 번성하고 땅에 충만하여 다스리는관계에서 이용해 먹어야 하는관계가 된 것이다. 땅이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내고 인간은 거기서 생존을 위하여 땀을 흘려야 하는 비우호적 관계가 된 것이다.

18.  그 후에 아담은 그의 아내의 이름을 하와라고 했다. 이는 생명이라는 뜻으로 성경은 이는 그녀가 모든 산 자들의 어머니가 되기 때문이라고 하였다(3:20).

19.  선악과를 따먹은 일과 관련하여 모든 처분이 있은 후에 성경은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혔고, 그들은 에덴 동산에서 쫓겨났으며, 하나님은 그룹들과 불 칼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켰다고 전한다(3:21-24). 그룹은 체루빔으로 천사와 같은 존재를 일컫는 말이다. , 하나님의 사자들로 인간이 생명나무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그리하여 그것을 따 먹고 영생하지 못하도록(3:22 참조) 지켰다는 것이다. 여기서 두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첫째, 하나님은 인간의 죄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징벌하시되(쫓아내심) 그들을 여전히 돌보고 계셨다(옷을 지어 입힘)는 것이다. 이것은 후에 예언서에서도 지속적으로 나오는 주제로서 하나님의 공의는 사랑의 반면, 혹은 사랑의 표현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인생을 사랑한다. 아무래도 그 사랑을 포기하지 않으신다.

20.  둘째, 생명나무 길목을 지키도록 한 이유가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의 손을 들어 생명 나무 열매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하는 것이었다는 사실이다(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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