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그인
  • 회원가입
  • 사이트맵
로그인
전체메뉴
닫기
성경통독회4주차(2021.4.4.주일)
첨부파일 2개

4기 평신도성경대학-백투더베이직(모세오경)과정-네 번째 독서(2021. 4. 4)

 

1.    아브라함(12-25)은 아버지 데라를 따라 갈대아 우르에서 하란으로 옮겨 하나님의 부름을 받기까지 거기에 살았다(11:31 참조). 그의 아내의 이름은 사래이며 임신하지 못하는 상태였다(11:30). 롯은 우르에서 죽은 형제 하란의 아들이므로 아브라함의 조카이다(11:27-28). 이 번 회차는 아브라함이 부름을 받은 12장부터 소돔과 고모라의 사건 직전까지(18:15)이다.

2.    아브라함은 가족들과 함께 하란에 살고 있을 때 하나님의 부름을 받는다.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줄 땅으로 가라”(12:1). 하나님은 그로 큰 민족을 이루며 복을 주고 그 이름을 창대케 하겠다고 말씀한다(12:2).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다”(12:2-3). 하나님의 부름은 매우 뜻밖이고 파격적이지만 그 뜻은 분명하다. 하나님은 그가 택한 자를 통하여 인생을 축복하시기를 원하셨다는 것이다.

3.    여기에 대한 아브라함의 응답은 즉각적 순종(실행)이었다(12:4). 히브리 기자는 이 때의 믿음을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다고 말한다(11:8). 믿음은 내어맡김이며 순종이다. 순종할 때 역사는 일어난다. 그는 하란에서 모은 모든 소유와 얻은 사람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떠나서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갔다”(12:5). 여기서 모든은 전적인 투신을 의미한다. 그는 하나님의 신실하신 약속과 부름에 자신의 모든 것을 완전히 내맡겼던 것이다. 주님은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다고 했다.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13:44). 복음은 마치 그와 같다. 세상 그 무엇보다 값지기 때문에 우리의 전인을 다 털어 넣어도 아깝지 않은 것이다. 하나님은 이러한 전적인 내어맡김을 요구한다. 그것이 믿음이기 때문이다. 믿는다면 내어 맡기고 그 믿음대로 행하는 것이다. 아브라함은 그런 점에서 합격점을 받았다.

4.    그러나 가나안 땅에서 그가 목도(目睹)한 현실은 무엇이었는가? 첫째, 그곳은 무주공산(無主空山)이 아니었다(12:6). 그러나 그는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는 약속에 의지하여 그곳에서 제단을 쌓았다(12:7).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의지하고 선포한 것이다. 그는 가는 곳마다 제단을 쌓고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다(12:8). 그러나 그에게 불어 닥친 것은 가뭄의 고통이었다(12:9). 그는 애굽으로 피신하지 않을 수 없었다. 먹을 것을 찾아 현실적인 선택을 한 것이다. 모든 환경으로 볼 때 하나님의 약속과는 멀어지는 것 같았다. 약속한 땅이 아닌 애굽에 피신하여 목숨을 연명하려고 아내를 누이라 거짓으로 고하는 신세가 되었다(12:11-13). 그는 연약한 인간에 불과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선택했고, 그는 순종함으로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가 될 자격을 얻어가고 있었다. 축복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이다.

5.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연약함을 축복의 기회로 바꾸어 주었다. 아브라함의 아내는 거짓으로 바로의 궁에 불려가면서 아브라함에게 큰 재물을 얻게 하였던 것이다(12:16). 그러나 사래의 일로 하나님은 바로와 그 집에 큰 재앙을 내렸다고 했다(12:17). 바로는 아브라함을 나무라며 그의 아내를 놓아주고 그와 함께 그의 아내와 그의 모든 소유를 내보냈다(12:18-20). 아브라함은 다시 가나안으로 돌아왔으며 거부가 되어 있었다(13:1-2). 그는 다시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다(13:4).

6.    아브라함 일행은 재물이 너무 많이 불어났으므로 떨어져 살지 않으면 안 될 정도가 되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은 조카 롯에게 제안한다. “우리는 한 친족이라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하지 말자.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가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13:8-9). 롯은 자신이 보기에 좋아 보이는 땅, 소알을 향하여 떠나 소돔 성에 정착하게 되었다(13:10-12). 그러나 그곳은 악하며 큰 죄가 있는 곳이었다(13:13).

7.    우리가 무엇을 보는가가 그 사람의 인생을 좌우한다고 한다. 눈 앞의 이익을 바라보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비전을 바라보는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 하나님은 그 약속을 이루시기 전에 반드시 꿈과 비전을 보여주었고,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주신 비전을 따라 감으로 축복의 통로가 되었다.

8.    그러므로 롯이 떠난 후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말씀을 보라.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내가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진대 네 자손도 세리라. 너는 일어나 그 땅을 종과 횡으로 두루 다녀 보라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13:14-17). 여기서 하나님은 (1) 눈을 들어 보라고 말씀하신다. 비전을 보게 한 것이다. 우리는 코 앞만 바라보는 근시안적 인생이 되지 말고 멀리 하나님 나라의 비전을 바라보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란다. (2) 후대에 대한 약속이다. 믿음의 사람들은 당장만 사는 사람들이 아니다. 우리는 미래세대를 바라본다. 원대한 비전과 포부를 가지는 것이다. 자신과 당대만을 바라보는 사람은 큰 사람이 되지 못한다. 미래를 바라보고 비전을 품는 원대한 꿈의 사람이 되라. (3) 하나님은 땅과 자손의 축복을 약속했다. 그것은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말씀과 상통한다. 하나님은 우리를 축복하려고 부르신 참 좋은 하나님이다. (4) 하나님은 그 땅을 다녀보라고 말한다. 비전은 실행을 통하여 구체화된다. 하나님의 비전은 지금 내가 밝고 서 있는 땅과 같이 구체적이고 확실하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 했다(11:1). 아브라함은 이 비전의 말을 듣고 거기서 하나님께 제단을 쌓았다(13:18).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표현한 것이다.

9.    그러나 자신의 보기에 좋은 것을 따라 갔던 롯은 곤란을 당하게 된다. 북쪽의 네 왕이 남쪽의 다섯 왕이 배반하므로 연합하여 쳐들어와 남쪽의 성들을 약탈하고 이 때 소돔에 거주하던 롯과 그 재물까지 약탈하여 갔던 것이다(14:12). 아브라함은 이들을 쫓아가 무찌르고 롯과 그 재물을 회복하여 주었다(14:14-16). 멜기세덱은 승전하고 돌아오는 아브라함을 축복한다(14:19). 멜기세덱은 살렘의 왕이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라고 했다(14:18). 그러나 멜기세덱이 누구인지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 성경에는 다만 시편 110:4절과 히브리서 5-7장에 언급된 것이 전부이다. 다만 지극히 높으신(엘룐) 하나님()을 대신하여 아브라함을 축복하였다는데서 택한 자를 승리케하시고 축복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족할 것 같다. 하나님은 승리의 하나님, 축복의 하나님이다. 즉 멜기세덱은 축복하기를 천지의 주재이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하였던 것이다(14:19-20).

10.  여기서 우리는 (1) 하나님은 천지의 주재 즉, 주관자이심을 안다. 그는 지극히 높은 하나님이다. (2) 하나님은 택한 자를 복 주시는 하나님이다. (3) 하나님은 대적을 택한 백성의 손에 붙이셨다. (4) 우리는 하나님을 찬양하여야 할 것이다. 그는 우리로 승리케 하시고 복 주시는 좋으신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11.  함께 마중 나왔던 소돔 왕은 아브라함에게 전리품을 취하라고 말한다(14:21). 그러나 아브라함은 사적인 이득을 취할 것을 마다하며 다만 그를 도운 사람들에게 보상할 것을 언급한다(14:22-24).

12.  이후에 하나님의 말씀이 환상 중에 아브라함에게 임한다.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15:1). 이것은 얼마나 복된 말인지 모른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늘 동행하고 계신다. 이 때 아브라함은 자녀의 문제를 꺼낸다. 하나님께서 땅와 자손의 축복을 약속해 주셨는데, 나에게는 양자 엘리에셀 밖에는 상속자가 없다는 것이다(15:2). 주께서 내게 씨를 주지 아니하셨지 않습니까(15:3)? 다소 도발적이다. 그러자 주님은 말씀한다. “그 사람이 네 상속자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15:4). 그리고 다시 아브라함을 밖으로 끌고 나아가 하늘의 별을 보며 말씀한다.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15:5). 대화는 기도이다. 우리는 기도로써 아브라함과 같이 하나님과 대화하고 주의 음성을 듣는다. 하나님은 현실을 바라본 아브라함에게 다시 비전(하늘의 별)을 바라보게 하신다. 그리고 그의 믿음을 격려한다. 아브라함은 그러한 하나님을 믿었다(15:6).

13.  그러자 하나님은 다시 땅의 약속을 말씀한다. 그것은 하나님의 예정과 섭리 가운데 있다(15:7). 어떻게 그것을 알겠는가(15:8)? 아브라함은 믿었지만 여전히 흔들렸다. 그러자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계약을 체결한다. 아브라함에게 짐승을 준비할 것을 명령하시고(15:9) 그가 잠든 사이 쪼갠 짐승 사이로 지나갔다(15:17). 이것은 고대의 계약 행위였다. 계약의 양 당사자는 쪼갠 짐승 사이로 나란히 지나감으로 계약이 체결되었음을 확증하였던 것이다. 그러면서 하나님은 자손과 땅의 약속을 재확인한다(15:18-21). 다만, 이 약속은 전적으로 하나님께 속한 약속이었다(횃불로 상징되는 하나님만이 일방적으로 쪼개진 짐승 사이로 지나갔다는 것이 이를 상징한다; 15:17).

14.  그러나 아브라함의 아내는 여전히 임신하지 못하는 상태였다(16:1). 그러므로 아브라함과 사래의 선택은 그녀의 몸종 애굽 사람 하갈을 첩으로 들여 후사를 잇고자 하는 것이었다(16:2).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인간적인 방법을 쓰곤 한다. 우리는 그만큼 연약한 존재이다. 히브리 말로 남자와 여자를 뜻하는 이쉬와 이쉬샤는 연약하다는 말에서 나왔다(2:23-24 참조). 그러나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인가?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는 하나님이다(8:26 참조).

15.  하나님은 아들을 임신했다 하여 여주인(사래)을 멸시하다 쫓겨난 하갈을 돌보셨다(16:4-15). 하나님이 다시 아브라함에게 자손의 약속을 하였을 때, 그리고 그 확실한 표로 할례를 명하였을 때 아브라함은 웃었다고 했다(17:17). 그리고 말하기를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 살기를 원하나이다고 말한다(17:18). 인간의 믿음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그러나 하나님은 네 아내 사라가 네게 아들을 낳으리니 너는 그 이름을 이삭이라 하라. 내가 그와 내 언약을 세우리니 그의 후손에게 영원한 언약이 되리라고 말씀한다(17:19). 하나님의 약속은 점점 더 구체적이 되어 간다(낳을 아들의 이름까지 지정해 주었다!). “내 언약은 내가 내년 이 시기에 사라가 네게 낳을 이삭과 세우리라”(17:21). 얼마나 놀라운 확언인가! 하나님은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믿음으로 순종하도록 도우셨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이 약속의 말씀을 하시고 그를 떠난 후에 말씀대로 할례를 행한다(17:23-27). 결국 믿음은 순종인 것이다. 순종하는 자가 믿음의 사람이다. 믿음으로 순종할 때 하나님은 역사하기 시작한다. 모세가 손을 내밀 때 홍해는 갈라지고(14:21), 떡과 물고기를 가져다 줄 때 오천 명이 먹고 남는 역사가 일어난 것이다(6:41-44와 평행구절을 참조).

16.  그 후에 하나님이 소돔의 죄악을 벌하기 위하여 오셨는데, 이 때도 아브라함에게 들러 그의 아내의 연약함을 도우시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사라는 속으로 이르기를 내가 노쇠하였고 내 주인도 늙었으니 내게 무슨 즐거움이 있으리요하면서 웃었다(18:12). 그녀는 불임이었는데다(11:30 참조) 경수도 그쳤으므로(18:11) 아이를 낳을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것은 어쩌면 상식적인 판단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그녀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은 단호하다. “여호와께 능하지 못한 일이 있겠느냐?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네게로 돌아오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18:14). 하나님은 능치 못함이 없는 하나님이다.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에게 불가능한 것이 있겠는가? 그러므로 주님은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고 하신 것이다(9:23). 하나님은 능치 못함이 없다. 그러므로 믿기만 하라는 것이다. 믿음은 바로 하나님의 능력에 줄을 대는 것이다.

17.  다음 회차는 18:16절부터 계속합니다.

주소 : (08252) 서울특별시 구로구 고척로21가길 61-5 서울목양교회 TEL : 02-2618-2777
지도를 클릭하시면 더욱 자세히 오시는 길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COPYRIGHT(c) 서울목양교회 ALL RIGHT RESERVED. PROVIDED BY 교회사랑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