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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통독회5일차(2021.4.11.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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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기 평신도성경대학-백투더베이직(모세오경)과정-다섯 번째 독서(2021. 4. 11)

 

1.    이번 회차는 18:16-25:18까지이다.

2.    이 부분에서 우리는 몇 가지 에피소드를 읽게 되는데, 첫째는 소돔과 고모라의 심판이다(18-19). 하나님은 아브라함 있는 곳에 들렸는데, 사라에게 아들을 낳을 것을 말씀하고는 떠나시면서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아브라함에게 알려주었다(18:17).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부르짖음이 크고 그 죄악이 심히 무거우므로그것을 확인하기 위하여 간다는 것이다(18:20-21).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다. 죄는 하나님의 통치에 반하는 것으로 하나님 앞에서 용납될 수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죄에 대하여는 반드시 심판하신다. 그러자 아브라함은 소돔과 고모라를 위하여 중보(中保)로 간청한다. 거기에는 사랑하는 조카 롯과 그 가족이 살고 있었다. 거기서 의인 10명을 찾으시면 그래도 그 성을 심판하시겠습니까(18:32)? 하나님은 그 열 명으로 인하여 심판하지 아니하겠다고 약속하고 아브라함의 곁을 떠났다(18:32-33). 그러나 거기에는 단 10명의 의인이 없었다.

3.    19:1-11절은 당시 소돔의 죄상을 묘사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동성애의 문제였다. 소돔 사람들이 롯의 집으로 몰려와서 그 밤에 네게 온 사람들을 끌어내라, 우리가 그들을 상관하리라(히브리어 야다는 알고자 한다는 뜻으로 여기서는 성적인 교섭을 의미하는 말로 쓰였다)”고 한 것이다(19:5). 롯은 이러한 악을 행하지 말라고 한다(19:7). 그러면서 두 딸을 내어 줄 테니 임의대로 행하고 자기 집에 온 손님에 대해서는 아무 일도 저지르지 말라고 한다(19:8). 두 딸을 임의로 내어 주겠다고 한 것은 오늘날 상식으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그것은 잘못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들의 눈을 멀게 하므로 그러한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막아 주신다(19:10-11). 성경에 때로 이러한 부조리가 기록된 것은 그것이 옳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인간의 죄된 현실이기 때문에 기록되었다는 점을 상기해야 할 것 같다. 인간은 실수하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그들을 돌보시고 보호하시는 좋으신 하나님이다.

4.    하나님은 롯과 가족들을 성밖으로 피하도록 했다. 롯이 딸과 결혼할 사위들에게 이 사실을 알렸으나 그들은 이것을 농담으로 여겼다”(19:14). 노아가 방주를 지을 때도 사람들은 그를 비웃었고, 오늘날도 복음을 들을 때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흘려듣는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일점일획(一點一劃)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고 성취된다. 썩어질 육체의 일에는 신중하나 영혼의 문제에 둔감한 일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를 깨달아야 한다. 인간은 영적인 존재라 영혼이 잘될 때 범사가 잘되고 강건하게 된다(요삼 1:2). 이것은 단순히 정신수양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5.    19:30-38절은 모압과 암몬의 조상이 어떻게 생겼는지를 알려 준다. 롯의 두 딸이 후사를 이를 가망이 없으므로 아버지를 술에 취하게 하여 부지중에 합방하여 자손을 낳았는데 이들이 각각 모압과 암몬의 조상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다시 한번 인간의 죄의 역사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하나님은 그들을 구원하고자 하였지만, 소돔과 고모라를 심판하시는 중에도 아브라함을 기억하사 그들을 구원하였지만(19:29), 그들은 여전히 죄 가운데 자손을 낳았다. 성경은 인간의 죄의 역사와 하나님의 부름을 기록한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코저 하시고 복 주기를 원하는 좋으신 하나님이었지만 인생의 불행은 죄와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그칠 줄 몰랐다.

6.    둘째는 아브라함과 아비멜렉의 사건이다(20). 여기서는 아브라함이 애굽으로 피신하였을 때와 동일한 사건이 기록되었다(20:1-2). 아브라함은 다시 거짓말을 했다. 이것은 분명히 잘못된 일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일로 인하여 어떻게 하시는가? 아비멜렉이 사라와 동침하는 불의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막으신다. 그리고 이 일로 인하여 아브라함은 더욱 부요하게 되었다는 것이 성경의 기록이다. 아브라함이 애굽에 갔을 때의 일과 동일한 패턴이다. 인간은 실수를 반복하지만 하나님은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분이다(8:28). 하나님은 택한 백성을 바른 방향으로 인도하고 축복을 베푸시는 좋으신 하나님이다.

7.    그리고 나서 드디어 하나님이 사라의 태를 여사 그녀의 몸에서 이삭을 낳게 하셨다(21). 세 번째 에피소드이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를 돌보셨고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에게 행하셨으므로 사라가 임신하고 하나님이 말씀하신 시기가 되어 노년의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낳았다는 것이다(21:1-2). 하나님은 말씀대로 행하는 분이다. 말씀하면 그대로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하나님을 신실하신하나님이라 고백한다. 그런데, 하나님의 응답에는 때가 있다. 본문은 분명히 하나님이 말씀하신 시기가 되어사라가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낳게 되었다고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때를 기다릴 줄 아는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믿음은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신뢰하는 가운데 기다리는 것이다. 기다린다는 것은 믿음의 표현이다. 기다리는 사람은 소망이 있는 사람이다.

8.    아들을 낳은 후에 아브라함은 첫째, 말씀대로 아들의 이름을 이삭이라고 했고 또 말씀대로 낳은 지 8일만에 할례를 행하였다(21:3-4).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 것이다. 아브라함이 축복을 받은 중요한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100% 순종한 것이었다. 기다림은 믿음의 표현이라고 했는데, 순종은 믿기 때문에 하는 것이다. 믿는 자는 순종하고, 순종하는 자는 참으로 믿는 자이다. 하나님은 이 믿음의 행위를 보시고 그를 축복했다. 하나님이 몰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우리를 자유자로 만드셨기 때문에, 우리를 인격적으로 존중하므로 그런 것이다. 첫 아담과 하와가 불순종하므로, 자신들에게 주어진 자유를 오용하여 죄 가운데 빠지게 되었다면, 아브라함은 부족한 가운데도 순종하므로 다시 말해, 자신에게 주어진 자유를 하나님의 뜻에 맞추어 따르는 선택을 함으로 축복의 통로가 되었다.

9.    둘째, 하갈과 이스마엘을 쫓아냈다. 본문을 보면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하갈의 아들이 이삭을 놀리므로 사라가 이것을 부당히 여겨 아브라함에게 그녀와 그 아들을 쫓아낼 것을 말했다는 것이다(21:9-10). 그러면서 사라가 한 말을 주목하여 보라; “이 종의 아들은 내 아들 이삭과 함께 기업을 얻지 못하리라”(21:10). 하나님은 근심하며 기도하는 아브라함을 향해 응답한다. “네 아이나 네 여종으로 말미암아 근심하지 말고 사라가 네게 이른 말을 다 들으라 이삭에게서 나는 자라야 네 씨라 부를 것임이니라. 그러나 여종의 아들도 네 씨니 내가 그로 한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21:12-13).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응답을 듣고 그제서야 사라의 말을 따라 행한다. 정확히는 사라의 말이 아닌, 사라를 통하여 말씀하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순종하였다.

10.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대로 하갈과 이스마엘을 돌보셨다(21:14-21). 그러나 이삭에게서 나는 자라야 네 씨라 부를 것이라는 말씀을 상고하여 보라. 약속은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이루어진다. 인간의 방법(이스마엘)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여기서도 하나님은 인간의 방법을 너머서 하나님의 뜻을 우리에게 계시하여 준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사라의 실수에도 불구하고 축복하셨지만, 약속의 성취는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대로 됨을 깨달아야 한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다”(16:9).

11.  이 일이 있은 후에 아비멜렉은 아브라함이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시다하면서 아브라함과 조약을 체결하고자 한다(21:22-23). 마치 아비멜렉과의 사이에 사건(20)과 이 사이에 이삭의 탄생과 이스마엘의 사건이 배치된 것 같다. 실로 하나님은 그가 무슨 일을 하든지 간에그를 축복하였다. 하나님은 아비멜렉을 통하여 이것을 알려준다. 내가 너희를 결코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14:18).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함께 할 것이다(28:20). 하나님은 우리에게 용기를 주고, 비전을 주고, 소망 가운데로 우리를 인도하는 좋으신 하나님이다. 그러므로 아비멜렉은 이것을 보고 아브라함과 선린의 관계를 유지하고자 한 것이다. 이 조약의 결과 아브라함은 암 양 일곱 마리를 주고 브엘세바의 우물에 대한 권리를 획득하였다(21:30-31). 그런데 이것은 32절에 그들이 브엘세바에서 언약을 세우매 아비멜렉과 그 군대 장관 비골은 떠나 블레셋 사람의 땅으로 돌아갔고라는 말로 보아,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에게 주리라 약속하신 가나안 땅의 남쪽 경계를 획정한 사건으로 볼 수 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나안의 약속을 해 주셨는데, 단에서 브엘세바까지 하면 바로 하나님이 약속한 이스라엘의 땅, 곧 가나안을 일컫는 말로 쓰였던 것이다(마치 백두에서 한라까지를 한반도로 별칭하는 것과 같다). 하나님은 당신의 약속을 하나씩 이루어 가고 계셨던 것이다.

12.  네 번째 에피소드는 독자 이삭을 모리아 산에 번제로 바치라는 하나님의 명령으로부터 시작된다(22:2). 이것은 정말로 이해하기 힘든 명령이었다. 첫째로 감정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들다. 하나님은 언제는 그를 통하여 축복하여 주리라고 하셨으면서 이제는 다시 내놓으라 하시는가? 얼마나 늦은 나이에 어렵게 얻은 친자인데, 그를 번제로 바치라는 말이 도대체 말이나 되는가? 둘째로 이것은 이성적으로도 납득하기 힘들다. 이삭을 통해 축복을 약속하셨는데, 그런데 이삭을 없애면 하나님은 도대체 어떻게 약속을 이루시겠다는 말인가? 이삭이 없으면 약속의 통로도 없어지는 것 아닌가? 이해할 수 없다. 셋째로 이것은 도덕적으로도 따르기 힘들다. 인신제사(人身祭祀)는 있을 수 없다. 이것은 우상을 숭배하는 이방종교에나 있던 일들로 하나님은 이것을 불의하다고 하셨다. 그런데 어떻게 사람을 죽여, 그것도 사랑하는 아들, 하나님의 약속의 통로, 이삭을 죽여 번제로 드리라는 말인가? 이것은 지적으로도, 정적으로도, 의지적으로도 불합리한 명령이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아브라함에게는 마치 이러한 판단과정들이 모두 빠져 있는 것 같다. 하나님의 명령이 있은 바로 다음 구절에 아브라함은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종과 그의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 하나님이 자기에게 일러주신 곳으로 갔다는 것이다(22:3).

13.  아브라함은 사고가 멎은 사람이었는가? 그는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감정이나 의지, 혹은 생각 같은 것이 없는 사람이었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오히려 비상식적일 것이다. 그런데 어째서 아브라함은 일언반구(一言半句)도 없이 하나님의 말씀에 즉시 순종했는가? 그것은 바로 이제까지의 그의 경험이 그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이면 무조건 따라도 된다는 믿음을 가지게 하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것은 아비멜렉이 본 것과 같은 것이었다. 아브라함이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은 그와 함께 하였던 것이다(21:22). 아브라함에게는 그러한 믿음이 있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명령이 분명히 보기에는 불합리하고 이해할 수 없고 따르기 힘든 것이었지만 말씀대로 길을 떠났던 것이다. “제물은 어디 있습니까?”라는 아들의 질문에 그러므로 아브라함은 대답한다. “내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22:8).

14.  그런데 아브라함의 믿음은 이러한 감동적인 말에만 있지 않았다. 그 다음을 보니까 아브라함이 하나님이 이른 곳에 이르러 그 곳에 제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 놓고 그의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제단 나무 위에 놓고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했다는 것이다(22:9-10). 그러니까 그제서야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다급하게 부르신다.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22:11-12). 아브라함은 이삭을 대신하여 하나님이 미리 준비하여 둔숫양을 잡아 제사를 드렸다(22:13).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 우리는 그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살 것이다. 하나님께서 다 준비하고 계신 것을 믿을진대 우리가 두려워할 것은 무엇이며, 걱정할 것은 무엇인가? 믿음은 우리를 평안케 하고 그 가운데 살게 하는 하나님의 은혜요 능력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오직 의인은 그 믿음으로 살리라고 한 것이다(1:17, 2:4). 하나님은 그러한 아브라함을 향하여 다시 자손과 땅의 약속을 말씀하신다(22:15-18).

15.  다섯 번째는 아브라함이 막벨라 굴을 가족의 매장지로 산 일이다(23). 아브라함은 사라가 죽자 그녀의 매장지로 헷 사람 소할의 아들 에브론에게서 막벨라 굴을 은 사백 세겔에 구입하였다(23:16-18). 겉보기에는 선의로 주고받고 하는 것 같으나 실상은 고대의 상거래 전과정을 기술한 것이다. 아브라함은 아내를 그곳에 장사하였고, 이후에 이곳은 아브라함 가계의 매장지로 사용되었다(23:19-20; 49:29-32, 50:12-13 참조).

16.  마지막 에피소드는 아브라함이 이삭을 위하여 며느리(이삭의 아내)를 맞고, 그는 죽었다는 것이다(24-25). 아브라함의 죽음을 보면서 우리는 사람은 저마다 감당해야 할 몫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 그것은 누구의 것도 아닌 나 자신의 것이다. 우리는 각자 자신의 소명과 자신에게 주어진 날들을 사랑해야 한다. 우리의 삶의 궤적들은 누구를 탓할 일도, 비교할 대상도 아니다. 그것은 나의 것이고, 하나님이 나에게 준 선물이다. 이 선물 상자를 풀어 아름답게 펼쳐 내기를 소망한다. 그리고 천상병의 싯구처럼 가서 아름다웠다고 말하는성도가 되기를 바란다. 인생은 아름답다. 나는 아름답지 않다 하지 말라. 하나님은 우리를 자신의 형상대로 창조하시고 보기에 심히 좋았다고 말씀하셨다(1:31).

17.  24장은 이삭의 아내를 찾는 과정을 이야기한다. 아브라함은 나이 많고 늙었으므로 종을 시켜 장래를 준비했는데, 그 처음이자 마지막이 바로 아들 이삭의 아내를 맞는 일이었다(24:1-4). 그는 종에게 맹세케하고 어떻게 아들의 아내를 선택할지를 말해준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몇 가지 말들이 있다. 첫째는 택한 여자가 함께 오려 하지 아니할 경우 아들을 그리로 데려 가리이까라?” 하는 종의 질문에 아브라함이 아들을 그리로 데리고 돌아가지 아니하도록 하라고 대답한 것이다(24:5-6). 그는 자신의 족속에서 아들의 아내를 찾기를 바랬지만 아들이 그리로 돌아가는 것은 원치 않았다. 그는 하나님이 나를 내 아버지의 집과 내 고향 땅에서 떠나게 하시고 내게 말씀하시며 내게 맹세하여 이르시기를 이 땅을 네 씨에게 주리라 하셨으니그 말씀대로 될 것을 믿고 아들을 위하여 아내감을 취하여 데려오라 명령한다(24:7-8).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 가운데종에게 명령했던 것이다.

18.  둘째는 하나님은 믿음의 종이 기도한 대로 표적을 보여주어 그가 기도한 대로 순조롭게”(24:12) 주인의 아들을 위하여 아내를 선택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었다는 것이다. 삶이 평화롭고 순탄했다면 감사할 일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앞길을 순탄케 인도하시는 좋으신 하나님이다. 하나님은 믿는 자들의 기도에 응답하시며 우리를 선한 길도 인도한다. 그러나 그리 아니하시는 것 같을 지라도 감사하라. 성도는 상황 때문에가 아니라, “하나님 때문에감사하는 사람들이다. 감사하면 감사할 제목이 생긴다. 사도바울은 범사에 감사하라고 했다; 그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다(살전 5:18).

19.  은금 패물을 신부의 집에 주고 신부를 데려오는 것은 고대의 결혼풍습이었다(24:53). 리브가는 고대의 예법에 따라 이삭의 아내가 되었고, 이삭은 리브가를 인도하여 그의 어머니 사라의 장막으로 들이고 그를 맞이하여 아내로 삼고 사랑하여 그의 어머니를 장례한 후에 위로를 얻었다”(24:67).

20.  아브라함이 죽고 장사되었다는 기사 후에 이스마엘의 후손과 그의 죽음을 기록한 것(25:12-18)은 하나님의 약속을 상기시키는 의미가 있다(21:13). 이는 하나님은 약속한 것을 반드시 이루실 뿐만 아니라, 그분에게 잊혀 진 존재는 없다는 위로를 우리에게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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