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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통독회6일차(2021.4.18.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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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기 평신도성경대학-백투더베이직(모세오경)과정-여섯 번째 독서(2021. 4. 18)

 

1.    아브라함의 일대가 일단락된 후, 하나님은 이삭을 통하여 야곱으로 약속하신 역사를 이어 가신다. 오로지 이삭만의 에피소드를 적은 부분은 단지 창세기 26장 밖에 없지만, 하나님은 이삭을 통해야곱으로 축복의 역사를 이어 가셨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하나님의 약속 앞에서 아무것도 사소하거나 작은 것은 없다. 이삭은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축복의 통로였다. 이 번 독서는 25:19-36장까지이다.

2.    새로운 세대의 시작은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의 족보로부터 시작한다(25:19). 이삭은 40세에 리브가를 아내로 맞았으나 그녀는 임신하지 못하는 상태였다(25:20-21). 그러나 하나님께 간구할 때 하나님이 그녀의 태를 여사 임신하게 되었는데, 그리하여 낳은 쌍둥이 아들들이 바로 에서와 야곱이었다(25:21-26).

3.    그리고 갑자기 이야기는 에서와 야곱 사이에 있던 두 가지 이야기로 튄다. 야곱이 팥죽 한 그릇으로 에서의 장자권을 산 일(25:27-34)과 야곱이 형과 아버지를 속이고 장자의 축복을 가로챈 사건이다(27). 야곱은 이 일로 인하여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피신하게 된다(창세기 28-33장까지는 야곱이 형을 피해 떠나 라반의 집에 머물다 다시 돌아와 형을 만나기까지의 역정을 그리고 있다). 그리고 그 사이에는 이삭이 그랄에 거주할 때 일어난 일을 기록하였는데(26), 이것은 마치 아브라함이 애굽에 피신했을 때(12:10-20)와 그가 그랄에 거주할 때 그랄 왕 아비멜렉과의 사이에 있던 사건(20)과 매우 비슷하다. 심지어 이삭이 이 일을 벌인 곳도 그랄이었으며 상대 역시 블레셋 왕 아비멜렉이었다는 것마저 동일하다(26:1). 하나님은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내가 지시하는 땅으로 가서 거류하라 하였는데(26:2), 그 땅이 바로 아브라함이 같은 일을 벌인 그랄 땅이었던 것이다.

4.    하나님은 그랄 땅에 머물 것을 말씀하시면서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한 축복의 약속을 이삭에게 다시 말씀한다. 바로 땅과 자손의 축복이다(26:3-5). 하나님은 이미 이삭을 통하여 주실 축복을 예비하셨고, 아브라함의 축복을 이삭에게 전하여 주었다. “이는 아브라함이 내 말을 순종하고 내 명령과 내 계명과 내 율례와 내 법도를 지켰음이라”(26:5). 하나님은 이것이 언약의 관계인 것을 상기시킨다. 그러나 막상 그랄에 도착한 이삭은 아버지와 동일한 잘못을 저지른다. 죽을까 두려워 거짓을 고한 것이다(26:7). 그러나 거짓은 곧 발각되었다(26:8). 하나님은 사태가 악화되는 것을 막으셨다(26:11). 그리고 그에게 복을 내리셨다(26:12). 하나님은 이삭에게 두려워하지 말라 말씀하시고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이 번성하게 하리라고 용기를 북돋우신다(26:24). 이삭은 그 곳에 제단을 쌓고 하나님을 불렀다(26:25). 그 후에 아비멜렉이 이삭과 평화조약을 맺은 것은 아브라함 때의 일과 같다(21:22-34).

5.    그럼 이제 다시 에서와 야곱 사이에 벌어진 일들로 돌아가 보자. 첫째, 에서는 시장기를 참지 못하고 야곱에게 장자권을 넘겼다. 이 일을 두고 성경은 이는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가볍게 여겼기 때문이라고 설명을 붙였다(25:34). 장자권은 상속권을 의미했다. 그것은 특별한 축복을 받을 권리였다. 장자는 특별한 대우를 받았다. 그것은 쉽게 변경될 수 없는 것으로서 장자는 언약의 계승자의 위치에 서게 되는 것이었다(27:27-29). 그런데 에서는 이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였다는 것이다. 주어진 위치를 귀히 여기고 축복을 사모해야 한다. 우리가 농담으로 있을 때 잘하라는 말을 종종 하는데, 정말 그렇다. 구원은 저절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와 인간의 응답으로 이루어진다. 그런 의미에서 후에 에서가 동생을 원망하며 남은 축복이라도 무엇이든지 달라고 아버지에게 조른 것은 부당한 요구였다(27:38). 사람의 생각에는 결과를 만들어내는 힘이 있다. 생각하고 꿈꾸는 대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우리는 무슨 꿈을 꿀까? 하나님의 축복을 꿈꾸기를 바란다.

6.    물론, 야곱이 아버지를 속인 것은 잘못이다. 이삭은 야곱이 첫 아들인가 확인하기 위하여 그의 팔을 만져 보기도 하고(27:21-22), 가까이 오게 하여 그의 향취도 맡아보았다(27:26-27). 그러나 그는 감각이 둔하여 식별치 못하고 야곱을 장자 에서로 알고 축복하였다. 야곱은 이것이 잘못인 것을 알았다(27:12). 그러나 그는 리브가의 말에 용기를 얻고 적극적으로 아버지를 속여 장자의 축복을 가로챘다(27:35). 그러므로 그는 형의 미움을 사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피신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이것은 모두 어떻게 보면 야곱의 욕심이 빚은 사단이었다. 믿음의 조상들의 역사는 순백의 정결함의 역사가 아니었다. 거짓말의 DNA를 물려 받았는지 아브라함은 애굽 왕과 그랄 왕 아비멜렉에게 거짓으로 목숨을 구하려고 했고, 이삭은 그랄 왕에게 아버지와 같은 거짓을 고했다. 그런데 이번에 야곱은 한 수를 더 떠 아버지마저 속였다. 자신의 안위나 욕심을 위해서였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러한 흠결을 축복으로 바꾸셨다. 이들은 모두 부족한 사람들이었지만 하나님은 이를 축복으로 바꾸사 그들로 거부가 되게 하셨다. 하나님은 우리의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를 구원하고자 하시며 축복하고자 하시는 좋으신 하나님이다(그러나 이는 물론, 그러므로 우리가 죄를 지어도 상관없다는 말이 아니다. 하나님은 어차피 축복해 주시는 분이니까 죄를 지어도 된다는 말로 이 말을 이해한다면 그야말로 잘못이다. 우리가 여기서 주목해야 하는 것은 인간의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돌보시는 하나님의 사랑이다. 죄는 어떤 경우에도 불의한 것이다).

7.    야곱은 밧단아람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피신하는 길에 벧엘을 지나간다(28:10-11). 거기서 그는 돌로 베개를 삼아 자다가 꿈을 꾸었는데, 하늘까지 닿은 사다리가 보였고 거기를 천사가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을 보았다(28:12). 그리고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는데, 내가 너의 조상들에게 약속한 땅과 자손의 축복을 너를 통하여 이루리라는 것이었다(28:13-14). 그리고 또 말하기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는 말씀을 주신다(28:15). 혈혈단신 형을 피하여 도망하다 광야 한 가운데 돌을 베고 자던 야곱에게는 이보다 더 큰 축복과 용기의 말이 없었을 것이다. 야곱은 아침에 일찍 일어나 베었던 돌로 기둥을 삼아 그곳에 세우고 기름을 붇고 그곳의 이름을 벧엘이라 했다(그 뜻은 하나님의 집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거기서 서원을 하는데,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고 지키시고 나를 먹이시면 그리고 내가 평안히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오게 하신다면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하는 것이었다(28:21-22).

8.    하나님은 누구의 하나님도 아닌 나의 하나님이다. 신앙은 하나님과의 1:1의 관계이다. 누구도 나의 구원을 대신할 수 없다. 내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먼저 회복되어야 한다. 우리는 나의 소망의 터에 하나님의 집을 건설하는 성도가 되어야 한다. 성도는 하나님 나라의 비전을 품고 사는 사람들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통치가 이 땅 가운데 그리고 우리의 삶의 구석구석에서 회복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다스리는 삶, 주의 장막에 거하는 자는 복된 자이다. 십일조의 축복이 있기를 바란다. 십분의 일을 드린다는 것은 내 삶의 주권이 주께 있고 주신 은혜에 감사한다는 고백이다. 우리는 물질의 종이 되지 말고 하나님이 주신 물질의 축복을 누리며 잘 관리하는 선한 관리자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것들을 선용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갈 사명을 받은 자들이다.

9.    야곱이 라반의 집에 머물면서 겪은 일들은 대략 다음과 같다. 첫째, 아내들을 얻은 일이다. 라반에게는 레아와 라헬이라는 두 딸이 있었는데, 야곱은 둘째를 더 좋아하므로 7년간 무급으로 일하면 그녀를 주겠다는 외삼촌의 말을 듣고 7년을 하루같이 일했다. 그러나 돌아온 대답은 둘째를 첫째보다 먼저 시집보내는 것은 법도가 아니므로 첫째 레아와 먼저 혼인을 하라는 것이었다. 야곱은 하는 수 없이 레아와 결혼하고 라헬을 위하여 또 다시 7년을 일했다. 그리하여 드디어 사모하던 라헬을 아내로 맞았는데, 성경을 보니 라헬은 자녀가 없었다. 다시 말해 임신하지 못하는 상태였다(29:31). 사라와 리브가와 라헬로 이어지는 불임의 역사와 하나님의 기적적인 능력으로 대를 잊게 되는 이 역사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구원과 축복의 역사는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으로 말미암음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라헬의 태를 열어 요셉과 베냐민을 낳게 하였고, 라헬은 막내 베냐민을 낳다가 죽었다(35:16-22). 이 사이 야곱은 레아와 라헬 그리고 그녀들의 시녀였던 실바와 빌하의 사이에서 12아들과 딸 디나를 낳았다(30:21). 이들은 이스라엘 12지파의 조상들이 되었다.

10.  둘째는 야곱이 라반의 두 딸과 결혼한 후 다시 라반의 집에 6년을 더 머물며 삼촌을 위해 봉사하고(31:41 참조) 그 대가로 가축들을 받아 거부가 되어 에서에게로 다시 돌아오게 된 것이다. 야곱은 라반과 계약하고 삼촌의 양떼를 쳤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야곱이 대가로 받기로 한 양들은 건강하여 풍성하여지고 라반의 양떼는 부실하여 보잘 것 없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라반의 아들들은 야곱이 수를 써서 아버지를 속이고 아버지의 재산을 탈취한다고 생각했다(31:1). 야곱에게 우호적인던 태세는 점점 적개심으로 변했다. 그러므로 야곱은 가족들과 재물을 가지고 도주하기로 결정한다(31:17-20). 도주를 결행한 지 삼 일, 라반은 뒤늦게 이 소식을 듣고 야곱을 맹추격하여 그에게 도달한다(31:21-23). 그리고 야곱을 추궁한다; 어째서 몰래 떠났냐는 것이다(31:26). 사실 라반의 말대로 야곱은 그의 사위이고 그의 아내들은 그의 딸들이었다. 사리에 맞게 보자면 인사라도 나누고 축복하며 서로 떠나는 것이 아름답지 않았겠는가? 그러나 이렇게 비정상적인 방식으로 야곱이 라반의 집을 떠나 에서에게로 향한 것을 보면 이 둘 사이의 관계는 매우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그들은 극단적으로 말하면 서로 속이고 속는 불의한 관계에 놓여 있었다. 야곱은 에서가 여전히 그를 증오하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겠지만 그래도 돌아가는 편이 낫다고 생각할 만큼 라반과의 관계는 틀어져 있었다. 라반이 야곱을 추격하여 왔을 때 하나님의 개입이 없었다면 어쩌면 일촉즉발의 긴장이 조성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은 라반에게 말씀하심으로 이러한 문제를 미리 차단하여 주었다(31:24). 여기에도 다시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의 손길이 작용하고 있었던 것을 보게 된다. 이것은 인간의 죄와 연약함의 역사와 하나님의 사랑과 돌보심의 역사의 연장이다. 아담과 하와의 죄악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부르시고 입히셨던 하나님의 선한 뜻은 계속되고 있었다. 야곱과 라반은 서로에게 악을 행하지 않을 것을 언약하고 각자의 길로 갔다(31:43-55). 이곳은 갈르엣 혹은 미스바라고 하였는데(라반의 방언으로는 여갈사하두다라 했다)(31:47-49), 그 뜻은 각각 증거의 돌무더기 혹은 망대라는 뜻이다.

11.  라반과 헤어진 야곱은 이제 에서와의 만남을 준비해야 했다. 라반의 추격도 두려운 일이지만, 에서와의 만남은 더욱 심난 한 일이었다. 야곱은 두려웠다. 그러므로 에서를 만나기 전에 최선을 다해 그의 마음을 누그러뜨리려고 야곱이 행하는 일들을 보면 안쓰럽기까지 하다. 그는 먼저 사자를 보내어 형의 마음을 사고자 한다(32:3-5). 그런데 에서가 4백명을 거느리고 그를 만나러 온다는 것이 아닌가(32:6)? 야곱은 가축 떼를 둘로 나누고 그래도 불안했는지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는다; 하나님여, 도와 달라는 것이다(32:7-12). 그렇게 밤을 지내고 야곱은 형에게 줄 예물을 취한다. 재물로 형의 환심을 살까 함이었다. 그는 이들 가축 떼를 종에게 맡기고 자신은 뒤로 물러섰다(32:16). 야곱은 에서에게 바칠 재물을 두 떼, 세 떼로 연거푸 배치했다. 그는 예물을 앞서 보내고 무리 가운데서 밤을 지내다가 밤에 일어나 두 아내와 두 여종과 열한 아들을 인도하여 얍복 나루를 건넜다”(32:22). 그는 그들을 먼저 건너가게 하고 자신은 혼자 거기 남아 날이 새도록 씨름했다; 성경은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였다고 적고 있다(32:24). 야곱은 홀로 남아 하나님과 씨름하였다.

12.  우리는 인생의 절체절명(絶體絶命)의 순간 얼마나 어떻게 그 문제들과 씨름하는가? 야곱의 기도에는 두려움과 간절함이 녹아 있었다. 그는 허벅지 관절이 어긋나는 순간에도 하나님을 부여잡고 말한다.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32:26). 야곱은 그 자리에서 하나님과 겨루어 이겼다는 이스라엘이라는 별명을 얻었다(32:28). 하나님은 그곳에서 야곱을 축복했다(32:29). 야곱은 그곳의 이름을 브니엘(“하나님의 얼굴이라는 뜻이다)이라 했다(32:30).

13.  그리고 드디어 야곱은 에서를 대면하게 된다. 에서는 4백의 장정을 거느리고 야곱에게로 왔다(33:1). 그러니 야곱은 바로 직전에 하나님과 씨름하여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얻었는데도, 그의 자식들을 두 패로 나누고 그들을 아내와 여종들에게 맡기고 여종과 그들의 자식들은 앞에 두고 레아와 그 자식들은 그 다음에 두고 가장 사랑하는 라헬과 요셉은 뒤에 두고(33:2), 자기는 그들 앞에서 나아가되 몸을 일곱 번 땅에 굽히며 형 에서에게 가까이 갔다(33:3). 여기서도 야곱의 지극히 인간적인 면모를 보게 된다. 얼마나 두렵고 떨리고 걱정이 되었기에 이와 같이 만반의 채비를 하고 형을 만나러 나갔던가?

14.  형 에서는 달려와 동생을 끌어안고 운다. 아마 형은 진심이었을 것인데, 야곱은 경계를 풀지 아니한다. 가족을 정중히 인사시키고 자신도 형을 향하여 절하며 이미 보낸 재물들에 관하여 야곱은 한없이 낮은 자세를 취한다(33:8). 그래도 형님의 얼굴을 뵈오니 하나님의 얼굴을 본 것 같다(33:10)는 말은 지나치다. 야곱은 사양하는 형을 향하여 기어이 재물을 바치고 형의 눈치를 살핀다. 에서가 내가 너와 함께 동행하리라는 말을 극구 사양하며 자식과 가축들을 핑계삼아 따로 갈 것을 간청한다(33:12-14). “내 종 몇 사람을 네게 머물게 하리라는 에서의 말에도 경계를 풀지 않는다(33:15). 야곱은 결국 에서를 먼저 보내고 자신은 숙곳에 이르러 집을 짓고 머물렀으며 세겜 성읍에 이르러 거기 장막을 치고 그곳 사람 하몰에게서 밭을 사 그곳에 제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엘엘로헤이스라엘 즉, “하나님,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라고 하였다(33:16-20).

15.  그런데 34장은 야곱이 세겜에 머무는 동안 딸 디나에게 있었던 사건을 기록한다. 그 땅에 거주하던 히위 족속 사람 하몰의 아들 그 땅의 추장 세겜이 디나를 강간하여 욕되게 하고 그녀를 아내로 삼기를 간청했다는 것이다(34:2-4). 지명과 인명(세겜)이 동일한 것이 흥미롭다. 아무튼 야곱은 고향에 정착하자마자, 에서와의 문제는 어떻게 넘긴 것 같았으나, 더 험한 일을 당하였다. 이 일을 들은 야곱의 아들들은 크게 노하였다(34:7). 그리하여 그들은 하몰과 그의 종족을 속여 피의 복수를 감행한다. 하몰과 그 족속들도 나름대로 잇속을 차리려고 야곱의 아들들의 제안을 받아들였을 것이라는 것은 어느 정도 추정이 가능하다(34:20-23 참조). 그러나 그로 인한 보복은 다시 야곱에게 두려움과 걱정거리가 되었다(34:30). 이러한 태도는 아들들의 정당한 반론의 이유가 되었다; “그가 우리 누이를 창녀 같이 대우함이 옳으니이까?” (34:31). 이 일화는 여러가지 생각할 것을 우리에게 던져준다.

16.  첫째는 세상문화와의 교섭의 문제이다. 1절을 보면 디나가 그 땅의 딸들을 보러 나갔다고 했는데, 이것은 택한 백성과 세속 문화 사이의 교섭을 상징하는 말이다. 창세기 6:2절에서도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았다는 말로 이러한 교섭을 표현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택한 백성들의 성결을 요구하신다(19:2). 너희는 거룩하라는 것이다.

17.  이 말은 우리가 세상을 등지고 살라는 말이 아니다. 건강한 신앙은 세상 가운데 살며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한다. 더구나 하나님이 창조한 세계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던세계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선하다 하신 것을 악하다 해서는 안 된다. 문제는 하나님도 아니고, 하나님이 선하게 창조하신 세계도 아니고, 그 가운데 문제를 일으킨 사람()의 문제이다. 우리의 죄로 인하여 땅이 저주를 받았다(3:17). 죄와 사망은 인생의 현실이 되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땅을 살며 구원을 소망하는 존재로 살 책임을 지게 되었다. 우리는 어떻게 이 책임을 다 하는 존재가 될 수 있는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을 받으므로 된다. 이것이 인생에 주어진 유일한 구원의 길이다.

18.  둘째로, 범죄한 인간의 존재는 순수하지 않다는 것이다. 야곱의 아들들은 보복할 마음을 품고 거짓을 꾸몄지만, 세겜 사람들 역시 자신들의 유익을 재면서 이들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이것은 범죄한 인간관계의 실상을 보여준다. 그들은 서로 이용해 먹는 관계로 전락하여 있었다. 오늘날 우리가 인간관계를 힘들어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상대방에 대한 의심의 그림자가 지워지지 않는다. 야곱이 에서를 끝까지 믿지 못하고 불안해했던 것도 이와 같은 이유 때문이었다. 바로 이 의심의 병이 아담과 하와로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고 선악과를 따먹게 한 원인이기도 했다.

19.  그러나 이러한 인간적 문제와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야곱에게 축복을 약속한다. 하나님은 야곱이 에서를 피해 도망하던 중에 하나님의 비전을 보았던 벧엘로 올라가서 제단을 쌓을 것을 명령하는데, 이 때에 보면 이들이 세겜에 머물면서 이미 세속문화에 물들어 있었던 것을 알게 된다(2절의 하나님의 정결명령과 4절에 그들이 실제로 자기 손에 있는 이방 신상들과 자기 귀에 있는 귀고리들을 야곱에게 주었다는 구절에서 그렇다). 디나의 사건은 괜히 일어난 사건이 아니었던 것이다.

20.  그들은 벧엘에서 제단을 쌓고 그곳의 이름을 엘벧엘이라고 했다(35:6-7). 벧엘의 하나님이라는 뜻이다. 하나님은 그곳에서 다시 야곱과의 약속을 확인한다.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창조의 축복이 반복된다(35:11). 그것은 아브라함과 이삭을 통하여 이어져 내려온 오랜 된, 그러나 다시 야곱의 대에서 갱신된 생생한 하나님의 약속이었다. 하나님의 말씀은 언제나 동일한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 지금도 살아 역사하는 말씀이다. 이후에 성경은 라헬이 베냐민을 낳다가 죽은 일(35:16-22)과 야곱의 족보(35:23-26), 그리고 이삭의 죽음(35:27-29)과 에서의 계보(36)를 차례로 적었다. 이것은 이삭과 야곱의 네러티브를 정리하면서 다음 이야기(요셉에 관련된 하나님의 역사)를 준비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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