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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통독회7주차(2021.4.25 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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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기 평신도성경대학-백투더베이직(모세오경)과정-일곱 번째 독서(2021. 4. 25)

 

1.    이번 단락은 창세기의 마지막 부분(37-50장까지)으로 요셉의 이야기이다.

2.    요셉의 이야기는 한 편의 드라마 같다. 야곱과 그의 가족은 가나안으로 돌아온 뒤 헤브론에 정착하여 살았는데(37:14 참조), 야곱은 형제들 중 특히 요셉을 사랑했다(37:3). 요셉은 형들이 혹시 잘못한 것이 있으면 그것을 그대로 아버지에게 말하는 성격이었으므로 형제들은 그를 불편해했고(37:2-4), 특히 형들의 곡식단들이 자기의 곡식단에게 절하고, 해와 달과 열 한 별들이 자신에게 절하더라는 꿈을 말한 후에는 그를 더욱 미워하게 되었다(37:5, 8).

3.    그러던 어느 날, 야곱은 요셉에게 양을 치러 세겜에 가 있는 형들과 양들이 잘 있는지를 살펴보고 오라고 한다(37:13). 형들은 다 양을 치러 나갔는데 요셉은 집에 있었던 것을 보면 이것도 형들에게는 불만이었을 것 같다. 요셉은 아버지의 말을 듣고 형들에게로 가서 도단에서 형들을 만난다(37:17). 그런데 형들은 요셉이 그들에게 오는 것을 보고 그를 죽이려고 모의한다(37:18). “꿈 꾸는 자가 오는도다. 하지만 우리가 그를 죽게 하고 나면 그 꿈이 어떻게 될지 보자”(37:19-20). 형들의 말에는 분노와 증오의 감정이 섞여 있었다. 그들은 요셉이 가까이 오자 그의 채색 옷을 벗기고 구덩이에 그를 던져 넣었다. 그리고 그들은 태연히 음식을 먹었다. 그런데 그들의 눈 앞에 애굽으로 내려가는 대상의 무리가 보이지 않는가(37:25)! 유다는 요셉을 죽은 것으로 꾸며 아버지께 고하고 차라리 그를 이들에게 팔아 넘기는 것이 낫지 않겠냐고 제안한다(37:26-27). 그리하여 요셉은 애굽으로 팔려가게 되었다(37:28). 그리고 요셉이 죽은 것으로 알게 된 야곱은 슬픔에 사로잡히게 된다(37:29-35).

4.    애굽으로 팔려간 요셉은 바로의 친위대장 보디발의 집에 종으로 팔려갔다(37:36, 39:1). 이 사이 38장에는 유다와 그의 며느리 다말 사이에 일어난 사건을 기록하고 있는데, 이 부분은 나중에 살펴보기로 한다. 성경은 하나님이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보디발의 집에 있었다고 전한다(39:2). 보디발도 그것을 보았다(39:3). 그러므로 그는 요셉에게 자신의 음식을 제외한 그의 집의 모든 것을 맡겼다(39:4. 6). 하나님은 요셉으로 인하여 보디발의 집에 복을 내렸다(39:5).

5.    요셉은 용모가 빼어나고 아름다운 사람이었다(39:6). 그러므로 보디발의 아내가 요셉을 유혹하게 되는데, 요셉은 이를 거절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내 주인이 집안의 모든 소유를 간섭하지 아니하고 다 내 손에 위탁하였으니 이 집에는 나보다 큰 이가 없으며 주인이 아무것도 내게 금하지 아니하였어도 금한 것은 당신뿐이니 당신은 그의 아내임이라.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39:8-9). 요셉은 보디발의 아내와 동침하는 것을 단지 주인에 대한 죄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죄로 여겼다. 이것은 죄란 반드시 하나님과의 관계에서의 문제를 포함하는 이중적인 문제임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하나님 앞에서(코람 데오)”의 의식이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 먹었을 때, 그것은 단지 하나님과의 단절뿐만 아니라 사람과 세상과의 단절로 이어졌다. 이것이 성경의 죄관이다. 세상의 법률은 행위 당사자 간의 문제로 사건을 바라보지만, 성경은 모든 죄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의 문제로 인식한다.

6.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은 집요하게 계속되었다(39:10). 그러나 그럴수록 요셉은 그녀를 멀리했다(39:10). 그러던 어느 날, 요셉이 일을 보러 보디발의 집에 들어갔을 때, 그곳에는 보디발의 아내와 요셉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39:11). 보디발의 아내는 이번에는 더욱 적극적으로 요셉을 유혹한다. 여자는 요셉의 옷자락을 붙잡았으나 요셉은 자신의 겉옷을 벗어 두고 그녀의 손길을 피해 도망한다(39:12). 그러자 여자의 사랑은 순식간에 증오로 변한다. 사람들을 불러 이르기를 이 히브리 종이 나를 겁탈하려고 들어왔다가 내가 소리를 지르므로 도망갔다고 거짓말한다(39:14-15). 보디발은 이 소식을 듣고 노하여 요셉을 옥에 가두었다(39:19-20). 그러나 그 곳에서도 하나님은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간수장에게 은혜를 입어 옥중의 모든 사무를 도맡게 하였다(39:21-23).

7.    그 곳은 왕의 죄수들을 가두는 곳이었는데(39:20), 거기에 마침 왕의 술 맡은 자와 떡 굽는 자가 함께 갇히게 되었다(40:1-3). 보디발은 요셉으로 하여금 그들을 섬기게 했다(40:4). 그러던 중 두 관원은 각기 다른 꿈을 꾸게 된다(40:5). 술 맡은 관원은 포도나무에 세 가지에서 얻은 열매로 술을 빚어 왕에게 바치는 꿈을 꾸었고 떡 맡은 관원은 떡 광주리 셋을 준비하였으나 그것을 새들이 와서 먹는 꿈을 꾸었다. 이 때에 요셉이 하나님을 의지하여 이들의 꿈을 해석하여 준다(40:8 참조). 그들은 요셉의 해몽대로 되었다(40:20-22). 요셉은 술 맡은 관원을 향하여 복권되거든 자기를 기억해 줄 것을 부탁하였으나(40:14), 그는 이것을 까맣게 잊고 말았다(40:23).

8.    이 일이 있은 2년 후, 이번에는 바로가 꿈을 꾼다. 첫 꿈은 살진 일곱 암소를 깡 마른 다른 일곱 암소가 삼키는 꿈이었고, 다음 꿈은 마른 일곱 이삭이 무성하고 충실한 일곱 이삭을 삼키는 꿈이었다(41:1-7). 바로는 이 이상한 꿈을 해몽하기 위하여 전국에 용하다는 점술가와 현인들을 불러들였다. 그러나 그 중 누구도 속 시원히 그의 꿈을 해석해 주는 자가 없었다(41:8). 그 때에 술 맡은 관원이 비로소 요셉을 기억하고 왕에게 그를 추천한다(41:9-13). 바로는 요셉을 불렀다(41:14). 그리고 그에게 꿈의 해석을 부탁한다(41:15). 그러자 이 때에도 요셉은 하나님을 의지하여 바로의 꿈을 해석하는데(41:16, 25), 바로 처음 일곱은 일곱 해 풍년을 의미하고 나중의 일곱은 그 뒤에 있을 흉년을 의미하니 풍년에 곡식을 저장하여 두어 흉년을 대비하도록 하라 조언한다(41:25-36). 바로는 이 일을 좋게 여겨 요셉에게 이 모든 일을 맡기고 그를 애굽의 총리로 임명했다(41:37-43). 요셉은 하루 아침에 일인지하 만인지상(一人之下 萬人之上)의 자리에 올랐다. 그는 자신의 소임을 충실히 수행했다(41:44-55). 이 때에 요셉은 바로가 그에게 주어 아내 삼게 된 보디베라의 딸 아스낫에게서 므낫세와 에브라임을 낳았다(41:50-52).

9.    7년간의 흉년으로 인한 식량난은 애굽은 물론 주변 지역에까지 미쳤다(41:56-57). 가나안에 살고 있던 야곱의 가족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그러므로 야곱은 아들들을 재촉하여 애굽으로 내려가 식량을 구해 올 것은 명령한다(42:1-2). 그러나 그러한 와중에도 야곱은 막내 베냐민은 집에 머물게 했다. 사랑하는 아들 요셉을 대신하여 그는 라헬의 소생 베냐민을 사랑했던 것이다. 아버지의 명을 받은 요셉의 형들은 애굽으로 출발한다. 그리고 거기서 애굽의 총리대신이었던 요셉을 만나 그에게 절한다(42:6). 하나님이 요셉에게 준 꿈 대로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나 형들은 그가 자신들이 팔아 넘긴 동생 요셉인 것은 꿈에도 몰랐다(42:7-8). 요셉은 형들을 시험하여 정탐꾼으로 몰아세운다(42:9). 요셉은 형들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재차 형들을 추궁한다(42:10-12). 그러자 형들은 자신들의 집 사정을 얘기하면서 막내는 연로한 아버지와 함께 계시고 동생 하나는 없어졌다고 둘러댄다(42:13). 그러자 요셉은 역시 의심스럽다고 하면서 집에 있다는 막내 동생을 데려오면 믿겠다고 말하고는 그들을 3일간 가두게 된다(42:14-17).

10.  3일 후 요셉은 형들을 풀어주고 그들에게 양식을 주어 보내면서 이르기를 막내 동생을 데려오라고 말한다(42:18-20). 그를 데려올 때까지 형제들 중 시므온을 인질로 잡아 둘 것이다(42:24). 르우벤은 이 일로 형제들을 책망했으나 요셉이 그들의 말을 알아듣는 줄은 알지 못했다(42:22-23).

11.  그들은 애굽에서 식량을 얻어 가나안으로 출발했다(42:26). 그런데 도중에 그들은 자신들이 받은 곡식 자루에 곡식 값으로 지불했던 돈이 그대로 들어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42:27). 난처하기 이를 데 없는 상황이었다. 그들은 가나안에 도착하여 아버지 야곱에게 이 일들을 고한다. 야곱과 아들들은 두려움에 휩싸였다. 애굽의 총리대신에게 오해를 살 것은 물론 야곱은 요셉을 잃은 터에 막내 베냐민마저 잃게 될까 두려웠다(42:36). 그러자 르우벤이 나서 야곱을 설득한다. 내가 꼭 막대동생 베냐민을 데려갔다가 다시 데려올 것이니 우리를 보내 달라는 것이다(42:37). 야곱은 완강했다(42:38). 그러나 기근은 계속되고 식량은 바닥이 났으므로 야곱은 아들들을 불러 다시 애굽에 다녀오도록 하지 않을 수 없었다(43:1-2). 그런데 이번에는 베냐민을 데리고 가야 했다. 야곱은 아들들을 탓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야곱은 유다의 맹세를 받고 베냐민을 데리고 가서 식량을 구해 올 것을 허락한다(43:11-14).

12.  그리하여 요셉의 형들은 베냐민과 함께 애굽으로 내려가 다시 요셉의 앞에 서게 되었다(43:15). 요셉은 신하들에게 명령하여 형제들과의 식사자리를 마련한다(43:16). 요셉의 부름에 형제들은 두려웠다. 지난 번 자루에 돈이 들어있던 일로 추궁을 당할지도 모르고 그 일로 애굽의 총리대신이 자신들의 것을 빼앗고 노예를 삼을까 걱정이 되었다(43:18). 그리하여 요셉의 집에 도착하자 그들은 요셉의 집의 청지기에게 사실을 고한다. 우리는 돈을 훔친 적이 없고 누가 자루에 돈을 넣었는지 결백하다는 것이다(43:19-22). 청지기는 돈은 이미 받았다고 그들을 안심시키고 갇혀 있던 형제 시므온을 그들에게 데려온다(43:23). 그리고 그들을 영접하고 식사자리로 안내하고 먹을 것을 내어오고 요셉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가 그들은 식사의 잔치자리를 함께 한다(43:24-34). 요셉이 도착했을 때 형들은 아버지가 준비시켜 보낸 예물들을 요셉에게 바친다(43:25-26). 요셉은 그들의 부친의 안부를 묻고 막내 베냐민을 보고는 몰래 운다(43:27-30). 요셉의 형들은 식사 자리에 형제들을 연장자 순으로 앉게 한 것을 이상히 여겼으나 총리대신이 요셉일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고 다만 함께 만찬을 즐겼다(43:31-34).

13.  요셉의 형들은 이제 다시 양식을 얻어 가나안으로 향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번에도 다시 요셉은 청지기를 시켜 형들의 자루에 돈을 넣도록 하고 특히, 막내의 자루에는 자신의 집의 귀한 보물 은잔을 넣어 보내도록 명령한다(44:1-3). 요셉의 형들은 다시 함정에 빠졌다. 그들은 결백을 맹세했지만 막내의 자루에서는 정말로 요셉의 은잔이 나왔고, 그들은 꼼짝없이 요셉의 명령대로 은잔이 발견된 베냐민을 애굽에 종으로 남겨두어야 할 처지가 되었다(44:17). 그러나 베냐민을 데려가지 않으면 아버지가 크게 낙담할 것이다. 유다가 나선다. 내가 대신하여 잡혀 있을 테니 아우를 집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 유다는 그간의 사정을 요셉에게 말하고 그들의 아버지를 위하여 선처해 줄 것을 호소한다(44:18-34). 유다가 허물 많은 사람이었지만(38장 참조), 그래도 어려운 순간마다 나서서 그 짐을 짊어지기를 자처한 것을 보면 하나님이 그의 가계를 통해 주님을 보내신 것도 뜻이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교회와 성도가 오늘날 세계를 향하여 이와 같은 리더십을 발휘하기를 기대한다.

14.  그러자 마침내 요셉이 시종들을 다 물리고 자신이 당신들이 팔아 넘긴 아우 요셉인 것을 밝힌다(45:1). 그는 큰 소리를 내어 울었다(45:2). 요셉은 부친의 안부를 묻고, 형들은 놀라 어떻게 대답할 바를 몰랐다(45:3). 요셉은 놀란 형들을 가까이 불러 다시 자신을 밝히고 그들을 위로한다(45:4-8). 여기서 요셉은 중요한 말을 하는데, 바로 이렇게 된 모든 것은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그렇게 하신 일이라는 것이다(45:5, 7-8참조). 이것이 성도의 역사관이다. 당신들은 악한 생각으로 나를 팔았지만 하나님은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분이다(8:28). 인간은 끊임없이 죄의 역사를 써내려 가지만, 하나님은 잠시도 쉬지 않고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우리를 축복하기 위하여 일하시는 분이다. 하나님의 섭리는 다만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교리적 고백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는 우리를 그토록 사랑하신다는 실존의 고백이다.

15.  요셉은 자신들에게 보복할까 두려워하는 형들을 안심시키고 위로했다(45:5). 야곱을 장사한 후에 또 다시 두려워하는 형들을 향해 요셉은 같은 말로 위로한다.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당신들은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50:19-21). 바른 믿음은 인생에 위로를 준다. 보복의 두려움을 호소하였던 가인에게 그렇지 않다고 말씀하셨던 하나님의 위로의 말처럼(4:15),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자들에 다 내게로 오라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처럼(11:28), 오늘날 교회가 세상을 위로하는 하나님의 구원의 기관으로서 사명을 잘 감당하기를 기도한다.

16.  그리하여 이제 야곱의 가족들은 애굽으로 이주하게 된다(46). 이주한 가족의 총 수는 70명이었다(46:27). 바로는 그들에게 애굽에서도 가장 비옥한 지역이었던 고센 땅에 거주하도록 배려한다. 야곱은 바로를 알현하고 그를 축복한다(47:7). 당대 세계 최고의 권력자였던 바로를 한낱 촌부에 불과했을 야곱이 그 앞에서 당당하게 축복하였다는 것은 얼마나 가슴 뭉클한 일인지 모른다. 그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그를 축복했다. 하나님의 택함 받은 백성의 특권이요 권위였다. 우리는 골리앗 앞에 담대히 나섰던 다윗에게서도 이러한 모습을 보게 된다(삼상 17:45). 믿음의 사람은 담대하다. 담대히 하나님을 선포한다. 성도는 나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에 의지하여 사는 사람들이다.

17.  야곱은 자신의 말마따나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았다(47:9 참조). 그러나 그의 마지막은 바로도 축복하고 하나님이 그에게 준 자녀들을 축복하고 눈을 감는 아름다운 것이었다(48-49). 그는 내가 죽거든 조상들의 묘지에 장사해 줄 것을 부탁하고 죽는다(47:30, 49:29-33). 그는 결국 아브라함과 이삭의 뒤를 이어 하나님의 구원과 축복을 전수하는 축복의 통로로서의 사명을 다하고 죽은 것이다. 사람은 끝이 아름다워야 한다고 한다. 인생은 끝을 생각하며 살 때 더욱 진지하고 성숙한 것이 된다. 하나님 나라의 소망은 현재의 삶을 풍성하고 아름답게 하는 자양분이다. 하늘나라의 소망 가운데 아름다운 인생을 가꾸어 가는 성도가 되기를 소망한다.  

18.  창세기는 요셉의 마지막으로 끝을 맺는다(50:22-26). 그는 고향에 묻혀질 것을 유언하고 애굽에서 죽었다. 그의 유언은 모세를 거쳐 여호수아의 때에 이르러 성취되었다(13:19, 24:32).

19.  마지막으로 38장의 유다와 다말의 이야기를 살펴보자. 이 이야기는 유다가 형제들을 떠나 아둘람 사람 히라와 가까이 지내다가 거기서 가나안 사람 수아라 하는 자의 딸과 결혼하여 세 아들을 낳았다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38:1-5). 유다는 첫 아들이 장성하자 다말이라는 여인을 며느리로 맞이한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하나님이 첫째 엘의 행위가 악함으로 그를 죽게 했다(38:7). 그러므로 유다는 당시의 풍습에 따라 둘째로 다말에게로 들어가 후사를 잇도록 하였다(38:8). 그런데 그도 죽었다. 이제는 막내 셀라가 들어갈 차례이다. 그러나 유다는 덥석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 셀라마저 죽으면 어쩌나 하는 염려였다. 그러므로 그는 그가 아직 어리다는 핑계로 다말에게 기다릴 것을 요구한다(38:11). 그러나 막내가 장성하였어도 소식이 없다. 그리하여 다말은 시아버지 유다가 양털 깍는 때를 맞이하여 딤나라는 곳으로 올라간 것을 틈타 창녀로 속이고 유다와 동침하여 임신을 하게 된다. 유다는 며느리가 임신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그녀를 불사르라고 말한다; 그녀가 음행을 하였다는 것이다(38:24). 그러나 그녀는 그녀가 시아버지를 속여 동침할 때 증거로 받은 도장과 끈과 지팡이를 보이면서 말한다. “시아버지에게 이르되 이 물건 임자로 말미암아 임신하였나이다. 청하건대 보소서. 이 도장과 그 끈과 지팡이가 누구의 것이니이까?”(38:25). 그제서야 유다는 자신의 잘못을 깨닫는다. 다말은 임신하여 쌍둥이를 낳았는데, 첫째는 먼저 나왔으므로 손에 홍색 실을 달았으나 동생의 뒤를 이어 나온 세라요, 둘째는 형을 밀치고 먼저 나온 베레스였다(38:27-30). 수치스러운 이야기이다. 그러나 이 수치스러운 죄의 역사 가운데 주님은 오셨다(유다와 다말이 예수님의 족보에 기록되고 있는 것을 우리는 복음서를 통해 확인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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