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그인
  • 회원가입
  • 사이트맵
로그인
전체메뉴
닫기
성경통독회11일차(2021.5.30.주일)
첨부파일 2개

4기 평신도성경대학-백투더베이직(모세오경)과정-열 한 번째 독서(2021. 5. 30)

 

1.    십계명과 율법과 규례들(19-24)

2.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은 출애굽한지 3개월만에 시내산 앞에 도착하여 거기에 진을 쳤다(19:1-2). 하나님은 거기서 이스라엘 민족에게 십계명을 내리는데, 그 전에 하나님은 그들이 성결케 준비할 것을 명령한다(19:10). 이 때 하나님이 백성의 다짐을 받기 위해 모세에게 하신 말씀을 보면 하나님은 무엇보다도 이 민족이 하나님의 언약을 잘 지켜 모든 민족 중에 그의 소유가 되고 그들은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될 것을 요구하셨음을 보게 된다(19:4-6 참조). 믿는 자들은 특별한 지위를 요구받는 것이다. 그들은 성별된 백성으로서 세계 모든 민족을 구원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로서 사명을 받았다. 그들은 이제 하나님이 주실 말씀을 따라 삶으로 이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

3.    하나님의 말씀을 받기 위해 준비하는 과정과 말씀을 받는데 있어 모세와 아론 외에는 올라오지 못하도록 극도로 제한하는 것을 보면(19:24), 요즘 인권사상에 물든 이들은 권위주의적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것은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의 무게를 생각하게 하는 장치로서의 측면이 있었음을 깨달아야 한다. 권위주의는 바람직하지 못하지만 권위(질서)는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만큼 중하다.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진지하게 받을 준비를 해야 했다.

4.    십계명은 출애굽기 20장과 신명기 5장에 기록되었다. 10개의 계명 중 4계명까지는 하나님에 대한 계명이고 나머지는 사람에 대한 계명이다. 어떤 분은 이것을 3분하여 설명하기도 한다. 하나님과(1-3계명), 사람과(5-7계명), 물질에 대한 계명(8-10계명), 그리고 제4계명은 안식일에 대한 계명으로 이들 하나님과 사람과 물질 사이의 3차적 관계들이 회복되기를 바라는 계명이라는 것이다. 먼저 1-3계명은 하나님 이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고, 우상 숭배하지 말고,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고 한다. 기독교 신앙은 유일신 신앙이다. 어떤 분들은 이것을 배타적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진리는 유일하다는 말씀은 배타적인 것이 아니라 진리의 속성상 당연하다. 이것도 저것도 다 옳다는 상대주의는 오히려 불합리하다. 거기에는 어떠한 객관적 윤리적 기준도 존재하지 않는다. 각자 자기가 옳다는 대로 하면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는 상대주의와 절대주의 사이의 논쟁을 불려 일으켜왔다. 그러나 유명한 테스형은 만일 상대주의가 옳다면 자신은 진리가 절대적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에 상대주의자들은 자신들의 논리에 따라 필연적으로 진리는 절대적이라는 자신의 믿음에 동의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상대주의는 논리적으로도 성립할 수 없는 것이다.

5.    게다가 유일신앙은 배타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인본적 권위도 절대화될 수 없다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틸리히 같은 신학자는 프로테스탄트 정신이 서구 문명의 발전에 원동력이 되었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어떠한 인본적 권력이나 사상에도 절대가치를 부여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 외에 어떠한 것도 절대화될 수 없다. 이 말은 모든 지상의 권세는 언제든지 문제가 발생할 수 있고 그것이 절대가 되어 사람 위에 군림하려 할 때에는, 다시 말해 불의한 권력이 될 때에는 언제든지 부정되어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이것이 서구의 자유주의 사상의 기초가 되었다. 천부인권은 인권의 절대화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기본권 위에 어떠한 인본적 권력도 절대화되어서는 아니된다는 사상을 말하는 것이다. 이 배후에는 바로 오직 하나님만이 초월하신 절대라는 확고한 믿음이 자리하고 있다. 그러니까 서구의 과학기술이 발전할 수 있었던 것도 사실은 바로 이 유일신앙 때문이었다. 하나님 이외에 모든 것은 의심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유일신앙의 가치를 바로 알아야 한다. 그것은 배타가 아니라 인본주의화에 대한 근본적 거부이다.

6.    5-7계명은 대인 계명인데, 가장 주요한 세 가지를 언급하였지만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그러나 이것이 가장 근본적인 문제라고 생각할 수는 있을 것 같다. 첫째는 부모 공경이다. 이는 가정이 가장 중요한 삶의 기초이기 때문이 아닐까? 오늘날 모든 사회심리적 문제의 근원을 파헤쳐보면 많은 부분이 가정의 문제에서 시작되었다고 분석할 수 있다. 가정이 흔들리면 인격도 흔들리고 사회도 흔들리고 인류의 삶은 불안정해진다. 오늘날 인류가 해결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이슈 중에 하나는 다름아닌 가정의 회복이다. 둘째는 살인하지 말라이다. 이것은 생명의 문제를 다룬다. 모든 생명은 하나님이 준 것이다. 더구나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아 그 생기를 부여받은 존귀한 존재이다. 그럼에도 오늘날 얼마나 많은 인명경시의 사건들이 발생하고 있는가? 우리는 인간의 근원적인 영의 문제를 깊이 생각해야 한다. 피상적인 법과 제도로는 도저히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우리의 영혼이 잘되야 범사가 잘되고 강건하다(요삼 1:2). 이는 예수를 믿음으로 그 영혼이 구원받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 셋째는 간음하지 말라이다. 이것은 남녀의 관계의 문제인데, 크게 보면 자신의 욕망을 위하여 타인의 육체를 이용하지 말라는 말로도 이해할 수 있다. 그것은 왜곡된 인간관계의 한 예이다. 주님은 이들 계명과 관련하여 근본적으로 우리의 마음으로부터 이미 문제가 된다는 점을 지적하였다(마태복음 5). 우리의 사상이 교정되지 않는 한 피상적 교정은 언제든지 문제를 일으킬 시한폭탄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겉으로는 나이스하지만 결국은 해묵은 인종갈등의 문제를 해소하지 못하고 있는 미국의 경우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그런데 이것은 인간 내면에 뿌리깊은 보편적 죄성의 문제이기도 한다. 누가 이 사망의 몸에서 우리를 건져내겠는가(7:24)?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우리를 해방하였다고 말한다(8:2).

7.    8-10계명은 대물 계명이다. 그런데 이들 계명은 다만 물질에 대한 관계에 있어서의 죄를 말한 것이 아니라 대인, 대 하나님의 관계에서의 문제를 동시에 다루고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성경의 죄관의 특징은 모든 관계에 있어 하나님의 개재하심을 전제한다는 것이다. 이것을 기독교 신앙에서는 코람데오(하나님 앞에서라는 뜻이다)의 정신이라고 말한다. 사람에 대한 범죄는 그 사람에 대한 것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것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요셉은 보디발의 아내가 꾀었을 때, “내가 어떻게 하나님께 죄를 짖겠냐고 한 것이다(39:9). 여기 대물 계명도 마찬가지이다. 도둑질하고 거짓증거하고 탐하는 것은 물질 관계에도 죄이지만 그 소유자에 대해서도 죄요, 이 모든 것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에 대하여도 죄가 된다. 성경의 죄관은 이와 같은 깊이와 두께를 가지고 있다.

8.    그리고 제4계명은 이들 관계의 회복을 명령한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20:8). 하나님은 6일 간 세상을 만드시고 이 날 쉬셨다(20:11, 2:1-3). 그것은 태초의 완성이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고, 하나님은 사람을 에덴동산에 두시고 그들을 축복하였다. 4계명은 바로 이 날의 회복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나라와 뜻이 회복되고, 하나님의 축복을 회복하는 날이 바로 안식일이다. 우리는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의 회복을 소망하며 오늘날 이 땅의 삶 가운데 하나님의 나라를 선취하여 산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 하나님의 통치가 회복되기를 바란다. 오늘날 우리는 주님이 부활하신 주일을 안식일로 지킨다. 구약의 모든 계명은 부활하신 주님으로 인하여 갱신되고 완성되었기 때문이다.

9.    십계명 이후에 성경은 부수적 규례와 법도들을 기록했다. (1) 제단에 관한 법(20:22-26): 이는 이방의 우상 숭배하는 관습을 따르지 말 것을 말한다. 신상을 만들지 말고 토단을 쌓아 화목제를 드리라(20:23-24). 돌단을 쌓으려거든 다듬은 돌로 하지 말고, 층계로 제단에 오르지 말라(20:25-26). (2) 종에 관한 법(21:1-11): 히브리 종을 산 경우, 칠 년째 되는 해에는 원칙적으로 자유인으로 놓아주라는 것이다. 특별한 사정으로 자의로 종으로 있고자 하면 정한 절차를 거쳐 평생 종으로 살 수 있다(21:5-6). 여종에 관한 법은 남종과 같지 아니하나(21:7), 이것을 가부장적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당시 여성이 사회적 보호에 취약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여성의 보호에 신경을 쓴 것에 주목해야 한다(21:8-10). 합당한 보호를 하지 못하는 주인은 조건 없이 그 여성을 풀어주어야 한다(21:11). 물론, 이러한 종에 관한 규정은 이것이 인간의 죄된 현실이기 때문에 두어진 규정이지 하나님의 창조의 본뜻에 합당하기 때문에 주어진 것이 아니라는 점은 이들 세부 규례들을 읽을 때 공통적으로 염두에 두어야 한다.

10.  (3) 폭행에 관한 법(21:12-27): ① 반드시 죽일 죄: 고의로 사람을 죽인 죄(21:14), 하나님이 그의 손에 넘긴 것이면 정한 곳으로 피할 수 있게 하였다(21:13). 부모를 치거나 저주하는 자(21:15, 17), 납치범(21:16). ② 손해를 배상하거나 보상해야 할 죄: 폭행, 상해죄(21:18-19), 임신한 여인을 쳐서 낙태하게 하였으나 다른 해가 없는 경우(21:22), 그러나 다른 해가 있으면 생명은 생명으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 덴 것은 덴 것으로, 상하게 한 것은 상함으로, 때린 것은 때림으로 갚을 것을 명하였다(21:23-25). 동형동질의 보복을 명한 것은 그 이상의 보복은 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가 있다고 한다. 그러나 태아의 생명권이나 산모의 정신적 피해 등에 관한 규정은 없다. 사람이 남종이나 여종의 눈이나 이를 쳐서 상하게 한 경우 그에 대한 보상으로 그를 놓아주어야 한다(21:26-27). ③ 형벌을 면제받는 경우: 사람(주인)이 매로 남종이나 여종을 쳐서 당장 죽지 않고 하루나 이틀을 연명한 경우 그는 상전의 재산이므로 형벌을 면할 것이라고 하였다(21:20-21). 종을 주인의 소유물로 취급한 것은 오늘날의 시각으로 보면 납득하지 못할 일이다.

11.  (4) 임자의 책임(21:28-36): 가축 가운데 특히 소의 소유주와 관련된 규정이다. ① 소가 남자나 여자를 받아 죽게 하였으면 소는 죽이되 주인은 책임을 면한다(21:28). 그러나, 소가 본래 들이 받는 버릇이 있는 것을 알고 임자는 그로 말미암아 경고를 받았음에도 단속하지 아니하여 그러한 결과가 났을 때는 소와 주인 모두 죽임을 당할 것이다(21:29). 그러나 희생자의 가족이 소 주인의 생명대신 속죄금을 요청하면 그 정한 대로 금액을 내고 사형을 면할 수 있다(21:30). 자유인의 아들이나 딸을 들이받은 경우도 전과 같다(21:31). ② 그러나 종을 들이받은 경우는 소 주인이 은 삼십 세겔을 종의 주인에게 주고 소는 죽일 것이다(21:32). 종을 주인의 재산으로 취급하던 시대였으므로 이와 같은 차별된 규정이 두어졌다. 물론, 이것은 인간의 죄의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③ 어떤 사람의 가축이 구덩이를 파 놓은 사람의 부주의로 인하여 구덩이에 빠져 손해를 입게 되면 구덩이를 판 자는 가축의 주인에게 배상하고 구덩이에 빠진 가축을 취할 것이며(21:33-34), 이 사람의 소가 저 사람의 소를 받아 죽이면 살아 있는 소를 팔아 그 값을 반으로 나누고 또한 죽은 것도 반으로 나누고, 그 소가 본래 받는 버릇이 있는 줄을 알고도 그 임자가 단속하지 아니하였으면 그(가해한 소의 주인)는 소로 (피해를 입은 소의 주인에게) 소를 갚고 죽은 것은 그(가해한 소의 주인)가 차지할 것이다(21:35-36).

12.  (5) 배상에 관한 법(22:1-15): ① 가축을 도둑질하여 잡거나(죽이거나) 판 경우 소는 5, 양은 4배로 갚아야 한다(22:1). 그러나 아직 죽이거나 팔지 않고 절도범이 그것을 가지고 있는 상태라면 배로 갚아야 한다(22:4). “이것은 다른 경우에 도적이 잡혔을 때 훔친 물건의 갑절을 배상하는 것(7,9)과 같다”(민영진 『출애굽기』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14), 432). ② 도둑이 뚫고 들어오는 것을 보고 쳐죽인 경우 면죄하는 것(22:2)3절에 해 돋은 후에는 피 흘린 죄가 있으리라고 한 것을 볼 때, 밤에, 보이지 아니하는 때에 행한 일에 대한 정당방위가 인정되는 경우를 말한 것이다. 그러나 도둑은 손해에 대하여 반드시 배상하여야 하고 배상할 것이 없으면 그 몸을 팔아서라도 도둑질한 것을 배상해야 한다(22:3). ③ 어떤 사람의 가축이 다른 사람의 밭이나 포도원에서 풀을 뜯어 손해를 입게 하면 배상해야 한다(22:5). 들에 불을 놓아 작물에 손해를 입히면 배상해야 한다(22:6). 10-11절은 타인의 짐승을 맡은 자의 과실이 없거나 입증되지 않은 경우 죄를 물을 수 없다고 한 것이고, 맡은 자가 도둑을 맞은 경우는 주의의무를 다하지 못했다고 할 수 있으므로 주인에게 배상하라 한 것이다(22:12). 그러나 그것이 다른 짐승의 공격으로 인한 것이었다면 그 증거를 제시하고 면죄 받을 수 있다(22:13). ⑤ 타인의 가축을 빌려 온 경우 가축의 주인이 현장에 있는 경우 손해는 배상책임이 없지만, 없는 상태에서 즉, 빌려온 가축의 관리책임이 온전히 빌린 사람에게 속한 상태에서 입은 손해에 대해서는 주인에게 배상하여야 한다(22:14-15). 돈을 주고 가축을 빌려온 경우 손해는 추가로 배상할 책임이 없다(22:15). 모든 경우를 감안하여 사용료를 지불하고 짐승을 빌려오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민영진, 436 참조).

13.  (6) 도덕에 관한 법(22:16-31): 약혼하지 아니한 처녀를 꾀어 동침하였으면 납폐금을 주고 아내로 삼을 것이요 만일 처녀의 아버지가 딸을 그에게 주기를 거절하면 그는 처녀에게 납폐금으로 돈을 내야한다”(22:16-17). 납폐금은 고대 결혼예법 상 신랑이 신부댁에 주는 혼례금을 말한다. 18절은 무당을 살려 두지 말 것을 명령한다. 무당(무카세파)은 문자적으로 악령의 능력을 빌려 초자연적 행위를 하거나 숨겨진 지식을 발견해내는 여자를 의미하나(민영진, 438 참조), 하나님 이외에 다른 신령한 것에 의지하는 행위에 대한 심판으로 이해하는 것이 옳다. 같은 의미로 20절에서는 여호와 외에 다른 신에게 제사를 드리는 자는 멸할지니라고 했다. ③ 짐승과 행음하는 자(수간)는 반드시 죽이라 했다(22:19). 동성애를 자기 결정권/선호의 문제라 하여 인정한다면 소아성애, 수간, 심지어 기계간 등 모든 형태의 성행위도 인정해야 할 것인데, 동성애자들은 소아성애는 안 된다고 하면서도 자신들은 되고 그들은 안 되는 이유에 대해서는 합리적인 설명을 내놓지 않고 있다(이태희 『세계관 전쟁』 서울: 두란노, 2016 참조). ④ 객과 고아와 과부를 압제하지 말라는 명령(22:21-24):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였기때문이다(22:21). 성경은 사회경제적 약자보호에 적극적이다. 그 다음에 가난한 자에게 돈을 빌려준 경우에 (물론 이것은 너와 함께 한 내 백성 중에서라는 한계가 있기는 하지만) 이자를 받지 말라거나 이웃의 옷을 전당 잡은 경우에는 해가 지기 전에 그것을 돌려주라고 한 것도 마찬가지이다(22:25-27). 그러나 이것은 죄에 대한 규정과는 별개인 것에 유념해야 한다. (백 번 양보하여) 동성애자가 사회적 약자로서 폭력적 대우를 받는다면 교회는 마땅히 그들을 돌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동성애가 죄가 아닌 것이 되는 것은 아니다. 성경에 의하면 동성애는 하나님 앞에서 분명한 죄이다(19:1-29, 18:22; 20:13, 고전 6:9, 딤전 1:10, 1:18-32 참조). 성경은 누구든지 제 죄를 회개하고 돌아오면 구원에 이를 것을 말한다. 동성애자가 사회적 소수자라 하여 보호되어야 한다 하면서 이것은 죄가 아니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성경의 약자보호와 죄의 문제를 혼합하고 혼동하여 기만하는 것이다. 동성애자들이 자신들이 죄된 상태에 빠진 것을 깨닫고 회개하고 돌아와 구원에 이르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⑤ 너는 재판장을 모독하지 말며 백성의 지도자를 저주하지 말라고 하였다(22:28). 로마서 13:1-7절 사이에 사도바울이 말한 바 세상의 권세에 대한 말과 비견하여 볼 수 있다. 29-30절은 처음 난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하나님에게 속한 것이라)는 말로, 하나님이 애굽의 장자를 치사 출애굽하게 한 날로부터 반복해서 나오는 명령이다. 가장 소중한 것을 주님께 드려 그의 주권과 통치를 인정하라는 것이다. 마지막 31절은 성결한 백성이 될 것을 요구하였다(11:45 참조).

14.  (7) 공평과 절기에 관한 법(23:1-19): ① 위증이나 부당한 증언을 하지 말고 재판을 공정하게 하라는 명령(1-3): 이것은 거짓 증거를 하지 말라는 십계명의 확장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혹은 타인의 손해를 목적으로 부당하게 재판에 영향을 미쳐서는 아니된다. 재판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공정해야 한다(3, 6). 4,5절은 이웃의 재물에 대한 계명을 더욱 확장하여 원수 혹은 미워하는 자의 짐승이 길을 잃거나 곤란을 당했을 때 어떻게 할 것을 가르친다. 길을 잃었으면 주인에게 돌릴 것이요, 짐을 싣고 엎드러졌으면 도와주라는 것이다. 이웃에게 거짓 증언하거나 탐내는 단계를 넘어서 원수라 할지라도 적극적으로 도울 것을 명령한 것이다. 이것은 주님이 마 5:38-48에서 가르친 말씀에 비견된다. 주님은 여기서 세상의 법칙을 따라 살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자기 주도적으로 사는 제자가 되라고 가르쳤다. 7절의 거짓을 멀리하고 무죄하고 의로운 자를 죽이지 말라는 말씀은 재판의 공정의 문제와 연결되어 있는 구절이고, 8절의 뇌물을 받지 말라는 말씀도 재판과 관련한 뇌물 혹은 일반적인 뇌물에 대한 경고로 볼 수 있다. 성경의 다른 구절들에서는 뇌물을 받고 재판을 불공정하게 하는 것에 대해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16:19, 17:23, 3:11, 7:3). 마지막으로 9절에서는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되었은즉, 이방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라고 명령한다. 우리는 모두 죄인이다. 누가 누구를 정죄한다는 말인가? 우리는 모두 위로와 도움이 필요한, 연약한 존재들이다. 누구보다 이 사정을 잘 아는 우리가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돕는 손길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④ 이와 같은 정신은 즉시 안식일과 안식년에 관한 법에 반영되었다. “일곱째 해에는 갈지 말고 묵혀 두어서 네 백성의 가난한 자들이 먹게 하고”(11), 일곱째 날에는 쉬고 숨을 돌리게 하고 하나님을 기억하라는 것이다(12-13). 안식일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삶과 관계들을 돌아보는 시간이다. 나는 과연 하나님의 뜻을 따라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가? 우리가 주일을 온전히 쉬면서 이것을 생각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한다면 우리의 삶은 더욱 풍성하여 질 것이다. 14-19절은 유대의 3대 절기(무교절, 맥추절, 수장절)의 명령과 처음 열매를 하나님께 드릴 것을 명령하였다. 우리는 이 절기의 명령을 또한 이웃과의 관계에서 이해해야 할 것이다.

15.  이 말씀을 다 마치고 주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으로 들어가게 되면 그곳의 모든 우상을 제거하고 하나님의 명령을 잘 지킬 것을 명령한다(20-33). 그리하면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지키실 것이고 대적을 물리치시고 복을 주실 것인데, 너희 중에 병이 없고(건강의 복), 낙태하는 자나 임신하지 못하는 자가 없을 것이고(생명의 복), 너의 날 수를 채우리라(장수의 복)고 했다(25-26). 하나님은 땅의 경계를 가리켜 주시면서 땅을 기업으로 얻을 때까지 조금씩 이 일을 행하시리라고 말씀한다(30). 바로 이 백성이 상할까 염려함이요, 그들이 평안히 번성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29-30절 참조). 하나님은 택한 백성을 지극히 사랑하시는 참 좋은 하나님이다. 그러므로 다른 신들을 섬기지 말라는 명령을 하시면서도 그들이 너를 내게 범죄하게 할까 두려움이라고 말씀한다(32-33). 그것은 너에게 올무가 될 것이다(33). 하나님은 이 백성이 우상을 숭배함으로 하나님과 대적하고 형벌에 이르는 것을 원치 않았던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당신의 말씀에만 순종하여 축복을 받고 누리는 성도가 되기를 원하신다.

16.  이와 같은 하나님은 시내산에서 모세를 통하여 택한 백성들과 언약을 세우셨다. 백성은 제단 앞에서 하나님의 명령을 준행할 것을 맹세했다(24:6-8). 이스라엘 자손의 존귀한 자들은 모세와 아론과 더불어 하나님을 뵙고 그 앞에서 먹고 마셨다(24:9-11). 종전까지 모세만을 허락하셨던 하나님은(24:1-3) 이번만은 그들에게 손을 대지 않고(11절 참조) 그들이 하나님 앞에서 즐기도록 허락하셨다. 그만큼 하나님께서도 이 언약을 기뻐하고 즐거워하셨던 것이다. 그러니 이 말씀에 순종하기만 하면 얼마나 많은 복을 받지 않겠는가? 모세는 십계명의 돌 판을 받기까지 시내산 꼭대기에 홀로 올라 거기 40일을 머물렀다(24:18).

주소 : (08252) 서울특별시 구로구 고척로21가길 61-5 서울목양교회 TEL : 02-2618-2777
지도를 클릭하시면 더욱 자세히 오시는 길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COPYRIGHT(c) 서울목양교회 ALL RIGHT RESERVED. PROVIDED BY 교회사랑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