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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기 제2강 시편 2편 (2016. 3. 20)

2강 시편 2 (2016. 3. 20)

 

1.    시편 2편의 묵상

1.1. 시편 1:1(happy, blessed)”에 이어 시편 2:12피하다, 피난”(refuge)은 시편 서론에서 두 번째로 중요한 단어이다. 그것은 누가 어째서 복 있는 사람인지를 나타낸다. 나는 누구를, 무엇을 의지(entrust)하는가? 왜 그런가? 어째서 그것이 복인가?

1.2. 시편 2:1-3 1:1-2와 대조된다. 특히 시편1:2에서 복 있는 사람은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한다(meditate)”고 했는데 이것은 2:1에서 헛된 일을 꾸민다(plot)”는 말과 대조된다. 1편에서 악인, 죄인, 오만한 자가 복 있는 사람과 대조되었듯이 여기서는 이방나라와 민족, 세상의 군왕과 관원들이 복 있는 사람과 대조된다. 그들은 무엇을 꾸미거나 꾀하는가? 그들은 누구를 대적하는가? 그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복 있는 사람과 이들의 차이는 무엇인가?

1.3. 시편 2:4-6 1-3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이다. 하늘에 계신 이(NIV enthroned 보좌에 앉으신 이라고 번역하였다)(4)가 지시하는 것은 무엇인가? 세상의 군왕과 관원들에 대한 그의 반응은 무엇인가?

1.4. 시편 2:7-9는 하나님이 세운 그의 왕(6절의 나의 왕”)의 연설이다. 이 연설에서 주인공은 누구인가? “철장(iron scepter)”은 통치권의 상징이다. 히브리어에서 깨뜨린다(to break)”는 말은 다스린다(rule)”는 말과 유사하다. 둘 다 가능한 해석이다. 누가 다스리는가? 왕은 누구의 위임을 받았는가?(이것은 고대에 일반적인 사상이었다).

1.5. 시편 2:10-12는 세상의 통치자들을 향한 경고로 결론짓는다. “지혜는 무엇인가? 여기서 다시 교훈을 받으라는 말이 반복된다(10). 11절에서는 이것이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된다. 무엇이 지혜인가? 누가 복있는 사람인가?(12).

1.6. 시편 2편은 누가 다스리는가?’에 대한 답변이다. 이것은 포로기 유대인들의 희망을 노래한 것이지만 오늘날을 사는 성도들에게는 종말론적 희망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 희망의 근거는 무엇인가? 시편1편의 노래와 연계하여 서론으로서 시편 2편의 요지는 무엇인가?

2.    묵상노트

2.1. 말씀을 통하여 감동 되는 생각을 적습니다. 이전까지 나의 삶, 일주일 간의 나의 삶은 어떠했는가? 나에게는 어떠한 상처 혹은 문제가 있었는가? 어떤 어려운 일이 있었고 어떤 즐거운 일이 있었는가? 하나님은 그런 나에게 어떤 말씀을 하고 계신가?

2.2. 나는 다음 주일까지 일주일을 어떻게 살기로 작정하였는가? 다음 일주일, 내 삶의 지표로 삼을 말씀(혹은 단어)을 정하고 노트에 적자. 그리고 일주일 간 이 말씀을 묵상하며 살기로 하자.

3.    시편의 신학

3.1. 시편 1,2(시편전체의 서론)에서 (happy)”의 의미는 무엇인가? 이것을 발견하는 것이 시편 전체를 이해하는 것과 같다. 시편 2:12피하다, 피난”(refuge)의 의미를 이해하는 것도 두 번째로 중요하다. 그것은 어째서 그가 복 있는 사람인지를 나타낸다. 나는 누구를, 무엇을 의뢰(entrust)하는가?

3.2. 하나님에 대한 의지(entrust)는 세 번째로 중요한 단어와 연관된다. “혹은 의로운 자라는 단어이다. 의는 도덕적 용어가 아니라 관계적 용어이다. 누가 의로운 자인가?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그 죄를 사함받은 자이다(32).

3.3. 이것은 하나님의 전권, 통치에 대한 인정으로 연결된다. 하나님이 다스리신다(God reigns)(93-99).[1] 그러므로 시편에서 하나님은 자주 왕으로 묘사된다. 지상의 통치자들은 하나님의 대리일 뿐이다. 제왕시편은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전권(God’s sovereignty)을 선포한다.

3.4. 그러나 이들 시편은 동시에 하나님의 통치에 대한 거역이 있음을 지적한다(2,3). 하나님의 통치는 이러한 반역과 고통의 한 가운데서 경험된다. 시인(우리)은 가난하고 괴로우며 온유하고 겸손하며 도움이 필요하고 기댈 곳 없으며 억압받는 자이다(9,10편 참조). 그러므로 시인은 기도하지 않을 수 없다(58,109,137편 참조).

3.5. 기도와 찬양은 불가분이며 시편에서 당골손님이다. 기도는 신뢰와 찬양으로 이어진다. 기도에는 탄원과 찬양이 동시에 일어나며 이것은 하나님에 대한 전적 의지의 표현이다. 찬양은 모든 것이 하나님께 달렸음을 선포하며 이것은 (개인 뿐만 아니라 정치, 사회경제, 환경 등 모든 면에서) 복음이다.

3.6. 인간이 죄를 지었을 때 하나님은 인간을 멸망시키거나 인간이 지은 죄의 결과로 이어지는 고통을 감수하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었다. 하나님은 후자를 선택했다. 시편에서는 이것을 헤세드(steadfast love)라고 한다. 하나님의 통치는 심판이 아니라 사랑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리더십은 군림이 아니라 섬김의 리더십이다.

3.7. 시편에서 헤세드는 율법(토라)에서의 그것과 일치한다. “하나님은 자비롭고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고 사랑과 신실하심이 충만하다”(34:6). 히브리어에서 자비와 모태(womb)는 같은 어원에서 왔다; , 그것은 모성애적 사랑을 의미한다. 시편에서와 같이 토라에서도 신실함(faithfulness)과 헤세드는 자주 한 짝으로 언급된다.

3.8. 그러나 하나님은 동시에 죄에 대하여 진노(wrath)하는 하나님이다. 그런데 이 진노는 사랑의 표현이다. 백성을 구원하기 위한 진노이다. 이것은 하나님이 인간의 죄로 인한 고통을 감수하기로 결정한 순간 예정되었다. 하나님은 의로운 방법으로 구원을 이룬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은 이 것을 가장 극명하게 드러냈다.



[1] Wilson은 이 부분(93-99)시편의 신학적 심장’”이라고 표현하였다(McCann, NIB Vol. IV, 6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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