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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기 제3강 시편과 신약성서(2016 .3. 27)

3시편과 신약성서(2016 .3. 27)

 

1.    초대교회에서 시편은 예배 때(3:16,5:19 참조) 혹은 신학적 자료(1:14-15 [1])로 사용되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은 하나님의 통치가 어떠한 것인지를 잘 나타낸다. 그것은 시편의 신학에서 이미 살핀 바와 같이 헤세드 즉, 사랑의 통치이다. 초대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바로 이 이상적 왕권을 보았다.[2]부활은 바로 이 사랑의 능력만이 진정한 삶의 원천이라는 사실을 드러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십자가의 길로 우리를 초대한다(8:34). 고난의 한 복판에서 축복을 선포한 시인과 같이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은 복된 길이다.

2.    그러므로 신약에서 시편을 자주 참조한 것은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다. 예컨대 시편29편과 누가복음 2:13-14를 보라. 2:7은 마3:17, 1:11, 3:22와 마17:5, 9:7, 9:35에서 인용되었다. 이들은 예수님의 신성과 고난받는 종의 모습을 각인시켰다. 예수님의 이러한 모습은 물론 그의 사역과 가르침에서 계속해서 나타났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의 수난에서 절정에 달하였다. 이 때 복음서는 시편을 자주 인용한다(118, 22, 31:5, 69).[3] 특히, 복음서는 시편의 탄원시들(시편38,41편 참조)을 예수님의 고난에 연결시켰다. 그리고 이러한 고난받는 종(suffering servant)의 이미지에서 드러나는 분명한 메시지는 바로 그의 사랑의 통치권(divine sovereignty of love)이었다.

3.    우리는 비록 유대인들에게는 거치는 것이요 헬라인들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고전1:23) 약할 때 강함되는 능력(고후12:9)의 비밀을 바로 이해해야 한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나타난 바 스스로 비천에 처할 줄 아는 능력으로 그는 부활하심으로 십자가의 죽음을 당하신 그 연약함이 사실은 그 어떤 것보다 강한 것이었음을 드러냈다. 십자가와 부활의 사건은 마치 시편의 탄원과 찬양이 교차하듯이 선포되었다. 베드로의 설교(8:25-34)는 주로 시16:8-11, 110:1, 132:11에 기초했고 시110편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하여 종종 인용되었다(고전15:25, 1:20, 3:1, 1:3, 8:1, 10:12-13, 12:2). 바울에게 있어서 그것은 우리를 의롭다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였는데 이것을 표현하기 위하여 바울은 시편을 인용했다(예컨대, 3:9-20과 시14:1-3, 143:2, 4:7-8과 시32:1-2, 15:9-11과 시89:49, 117:1 등을 참고하라).

4.    비록 직접적인 인용은 드물기는 하지만(2:26-27만이 시2:8-9를 인용하였다) 계시록에는 시편에서 영감 받은 노래들이 가득하다. 계시록은 하나님이 다스리신다는 시편의 기본적인 신앙고백을 공유한다(11:15, 12:10, 15:3). “새 노래”(5:9, 14:3)는 하나님의 통치를 선언한 시편96, 98, 149편을 연상시킨다. 특히, 장차 임할 하나님의 나라에서 주님과 함께 다스릴 백성들의 비전에서 나라들의 회복”(22:1-5)은 시편149편에 비견된다(2:26-27, 5:10과 시149:5-9를 마저 참조하라). 장차 그들이 하나님 앞에서 찬양할 것이다(15:3-4, 86:9-10, 145:17). 마지막 때에 대한 비전은 단지 종말에 대한 예언이 아니라 하나님이 다스릴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비전이다. 그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통치(나라)의 비전이요 그에 대한 찬양과 소망의 선포이다.

5.    시편 90편의 묵상(시편93-99편과 149[4]을 이어서 보라)

5.1. 시편 90편은 이스라엘 민족의 울부짖음에 대한 응답으로 주어졌는데 이 편의 제목은 시편에서 유일하게 하나님의 사람 모세의 기도라고 붙여졌다. 이것은 당시(포로기) 유대 백성들에게 그리고 오늘날 우리들에게 무엇을 가르치는가? 이 편은 시편의 신학적 심장[5]이라는 93-99편에 선행하여 그것을 이끈다. 이들 시편의 핵심은 하나님이 다스리신다(God reigns!)는 선포임을 유념하여 생각해 보라.

5.2. 거처(dwelling place)”영원(everlasting)”(1-2); 하나님은 우리에게 도대체 누구신가? 예수님은 우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고 다시 오신다 하였다(14:1-3).

5.3. 이어지는 절들(3-6)에서도 시간의 경과를 나타내는 단어들이 많이 쓰였다. 당신은 여기에서 무엇을 관조하는가? “돌아가라(turn back)”(3)는 말은 회개하라(repent)”는 명령으로 번역될 수도 있다.

5.4. 하나님의 분과 진노 중에 인생이 지나간다는 고백(7-11)은 우리에게 무엇을 생각하게 하는가? 하나님은 어느 때, 왜 진노하셨는가?(이스라엘 역사를 생각해 보라). 12절의 말씀을 당신을 어떻게 읽는가?

5.5. 마지막으로 시인은 무엇을 간구하는가?(13). 3절의 돌이키라는 명령과 연관하여 이 절의 간구는 무엇이 다르고 어떤 의미가 있는가? 이것은 출애굽기 32-34장과 신명기 32장의 노래와 같이 읽어야 한다. 14절 역시 (물론 만족의 내용은 다르지만) 출애굽기 16장을 연상시킨다. 이것은 나에게 어떤 의미로 읽히는가? 13-17절은 여전히 시간을 노래하지만 전 절들(1-12)과는 사뭇 다른 시간이다. 시인은 누구에게 무엇을 왜 간구하고 있는가? 그것은 무엇이고 나에게 그것은 어떤 의미를 던지는가?



[1] 예컨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다는 예수님의 일성(一聲)은 하나님의 통치(sovereignty)를 인정한 시편의 선포와 같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통치를 현재적 실재로 선포하면서 그리로 우리를 초대하였다(McCann, NIB Vol. IV, 672). 마태 5:1-11과 누가 6:20-23에 나타나는 복 있는 사람은 예컨대 시편 1,2편에서 이미 공부한 그것과 같다.

[2] “따라서 그들은 예수를 기름부음 받은 자’(메시야, 그리스도, 2:4; 1:1)와 하나님의 아들(1:1, 2:7)이라고 불렀다. 십자가는 패배의 상징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품과 전권의 분명한 표시였다”(McCann, NIB Vol. IV, 673).

[3]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은 시편118편을 참조하여 장차 당하실 고난이 출애굽과 포로귀환이라는 하나님의 과거 구원행위를 뜻하는 것처럼 보이게 한다(21:9, 11:9-10, 19:38, 12:12). 십자가 사건은 시편22편에 비견된다. 27:46과 막15:34의 십자가 상에서 예수님의 말씀은 시편22:1의 인용이다. 누가복음에 나타난 예수님의 마지막 말씀(23:46)과 요한복음의 그것(19:30)은 시편31:5(요한의 경우는 시22:31까지)를 연상시킨다. 수난기사는 시편69편의 영향을 받았다(27:48, 15:36, 19:28-29는 시69:21을 요15:25는 시69:4에 해당한다)”(McCann, NIB Vol. IV, 673).

[4] 시편 1-3권을 외침이요 4-5권을 그에 대한 응답이라면 149편은 시편의 결론이다(McCann).

[5] Wilson은 이 부분(93-99)시편의 신학적 심장’”이라고 표현하였다(McCann, NIB Vol. IV, 6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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