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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기 제9강 전도서의 이해와 1-2장의 묵상(2016. 5. 29)

9강 전도서의 이해와 1-2장의 묵상(2016. 5. 29)

 

1.    전도서는 예배의 인도자, 설교자 혹은 선생의 말(다바르 코헬렛[1])로 시작된다. 이 전도자(코헬렛)가 누구인가에 대한 논란이 있으나(그에 따라 저작 시기에 대한 이견도 발생한다) 우리는 본문을 따라 다윗의 아들 예루살렘 왕 즉, 솔로몬[2]의 저작으로 추정한다(1:1).

2.    전도서에 나오는 몇 가지 중요한 단어를 이해하는 것이 이 책의 이해에 도움이 될 것이다.

2.1. 모든()”: “모든 것이 헛되다”(1:2)고 운을 뗀 저자는 전도서 전체 절의 41%에서 이 단어를 쓰고 있다. 이것은 구약의 다른 책들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은 수치이다. 다른 지혜서들에서도 전도서만큼 이 단어를 강조해서 쓰지는 않았다(잠언은 8.3%, 욥기는 6.2%를 쓴데 불과하다). 이것은 그만큼 전도서가 인생에 대한 우주적, 보편적 관점에서 쓰여졌다는 것을 말해준다. 하나님의 말씀은 어느 때, 누구에게나 합당하다.  

2.2. 허영, 자만심, 헛된(헤벨)”: 헤벨이라는 단어는 구약에 총 69회 쓰였는데 이 중 5회는 가인의 동생 아벨의 이름으로 쓰였으므로 나머지 총 64회 중 60% 38회가 헛되다1:2절의 선언이래 전도서에 주로 나타난다. 영어에서는 “Vanity of vanities” 등으로 번역되었고 우리말로는 헛되다고 번역되었지만 그 원 뜻은, 비록 다양하지만, 수증기(vapor) 또는 숨(breath)라는 말이다(57:13을 참조하라[3]). 그것은 무언가 무익하고, 그럴 법 하지 않고, 쓸모 없는, 불합리하고 모순된 인생의 모습을 대변한다.  

2.3. 힘들게 일함, 고생(아말)”: 이 단어는 구약의 약55회 중 40%에 해당하는 22회가 전도서에 쓰였다. 이것은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식의 긍정적 의미가 아니라 문제(3:10;5:6), 피곤함(73:16), 슬픔(20;18), 악행(4:8; 140:9), 심지어 억압(26:7)과 같은 부정적 사상을 수반하는 단어로서 수고이다. 창세기 3장에 범죄로 인한 인생의 비극적 현실이 바로 그것이다.   

2.4. 지혜(호크마)”: 이 단어는 1:13에서 시작하여 전도서에 약 26회 나타난다. 비슷한 단어인 하캄(“지혜로운”)도 거의 같은 22회 나타나고 동사의 형태로도 4회 쓰였다( 2:15, 19, 7:16, 23). 그러나 전도서는 이 단어를 다른 지혜서와 같이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나 율법, 가르침(토라)”으로 말하지 않았고 꿈을 해석하는 능력(다니엘) 같은 것으로 취급하지도 않았다. 전도서에서 그것은 진리를 발견하는데 사용되는 지적 능력(2:3; 7:23) 또는 적어도 진리는 발견될 수 없다는 깨달음을 의미했다(1:12-14). 그것은 현자의 자질 같은 것일 수 있으나 그만큼 번뇌와 근심을 일으키는 것이기도 하다(1:18). 전도서는 인과론과 같은 일반적인 관념을 넘어선다(의인에게도 불행한 일이 닥치기도 한다). 오직 분명한 것은 하나님이 모든 것을 다스리며 죽음은 보편적이라는 사실이다. 이 밖에 다른 모든 인간의 (도덕)질서는 보편 타당하지 않다.

2.5. 운명(미크레흐)”: 운명, 기회라는 의미의 이 단어는 전 2:14에 처음 나타난다(“당하는 일로 번역되었다). 성경에서 10회중 7회가 전도서에 쓰였다.[4] 전도서에서는 삶의 투쟁의 결과를 표현할 때 이 단어가 쓰였다(2:14-15; 3:19; 9:2-3). 이 단어는 기회나 우연한 사건이 아니라 사실(fact)이다. 비록 우리가 거기서 아무것도 배울 수는 없으나 그것은 하나님이 공포한 것인데 그것은 죽음이다.

3.    전도서의 철학: 위의 핵심 단어로써 전도서가 밝힌 것은 인간의 현실이다. 세상은 불합리하다(absurd). 이해할 수 없는 것 투성이이다.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없는 것들이 너무 많다. 그것은 하나님의 손에 맡겨진 것이나 그렇다고 인간의 자유가 제거된 숙명론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deterministic but not fatalistic; 11:9를 보라). 하나님의 섭리와 인간의 자유와 책임, 전도서는 인간의 부조리한 현실 속에서 그것을 언급하고 있다.

4.    전도서 1-2장의 묵상

4.1.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전 1:2절은 전도서의 주제를 밝힌다. 여기서 핵심 단어는 헛되다고 번역된 헤벨(hebel)이라는 단어인데 그 뜻은 부조리, 불합리하다(absurd)는 말에 가장 가깝다. 그것은 단지 일시적이고 덧없는 것(vapor) 이상이다. 그것은 반복적으로 일어나지만 그 마지막도 처음처럼 아무런 의미도 주지 못하는 그 무엇이다. 이것이 전도자의 인생에 대한 평가이다. 현실은 어떤 방향이나 목적도 없이 불쑥불쑥 일어나는 사건의 연속과 같다. 거기에는 어떤 긍정적이거나 부정적 의미도 없다. 그저 일어나는 현상으로 경험되는 그것이 인생일 뿐이다.

4.2. 나머지 1-2장에서 전도자는 그러한 인생의 모습을 다섯 가지 예에서 경험한다. (1) 그러한 인생의 모습은 세대에 걸쳐 반복해서 나타난다(1:3-11). 흔히 역사에서 교훈을 얻는다고 하지만 그것도 헛된 말인 것 같다. 역사에서 교훈을 얻었다면 어째서 인류는 동일한 잘못을 끊임없이 반복하는가? (2) 지혜로 얻을 것도 아무 것도 없다; 인간의 지혜도 헛되다(1:12-18). (3) 즐거움도 헛되다(2:1-11). (4) 지혜자나 우매한 자나 매 한가지로 헛되다(2:12-17); “호사유피 인사유명이라고 하는데 만일 그 영혼이 예수 믿지 않고 멸망에 이른다면 그 이름이 무슨 소용인가? (5) 수고로이 일한 것도 헛되다(2:18-23); 다만, 하나님은 먹고 마시고 일하는 일상에서 오는 기쁨을 주시는데(이 기쁨을 누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 줄 믿는다) 어리석은 자는 이것을 알지 못하고 헛되이 수고한다(2:24-26).



[1] 코헬렛은 카할(“소집하다, 모으다, 구성하다, 조립하다”의 뜻을 가진 동사)의 여성 단수 분사이다. 카할은 부름 받은 하나님의 백성 즉, 교회의 구약적 어원으로 이해된다; 김광식 『조직신학(III)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1994), 16 1, 107 참조.

[2] 솔로몬은 3천의 잠언과 천 다섯 편의 시를 지었다고 했다; 그는 지혜의 왕으로 유명했다(왕상 4:29-34참조). 그는 용사이자 음악과 시에 능했던 아버지(다윗)의 재능을 물려받았을 것이다. 다윗은 음악으로 사울의 악령을 쫓아냈고(삼상 16:23) 시편의 많은 부분은 다윗의 것이다.

[3] 여기서 영어는 “breath”, 한글로는 기운이라고 번역했다.

[4] 전도서 외에 쓰인 3회는 각각 삼상 20:26, 2:3, 삼상 6:9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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